나물과 잡초사이....
[쑥비듬]
시골 방언이라지만 태어나고 자라면서 배운 단어이다.
1960년대에 태어나 70년대 중반 소년기를 거치면서 그래도 형이나 누나 보다는 덜 접했지만 그래도 기억나는 음식들이 있다.
보리개떡이 있고 그저 삶은 감자에 갖가지 나물 섞어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봄이면 산천에 흩어진 쑥을 캐다가 밀가루와 버무려 찐 쑥비듬이 있었다.
먹을거리가 풍족하지 않아 피치 못할 사정으로 대체식량 역할을 했지만 옛날 향수를 떠올리게 되는 시골 사투리이다.
[고향땅 냉이 한소쿠리]
조부님이 생존해 계실때엔 첫째딸, 즉 나에게 큰고모님이 자주 오셨다.
아드님이자 나의 고종사촌 형님은 서울에서도 고위직 공무원이어서 고모님의 서울생활은 익숙할법 한데 어려웠던 고향땅의 기억을 무척이나 소중히 여기셨다.
그런데 어느날 냉이 한소쿠리를 뜯어 오셨다가 동생인 나의 아버지에게 호된 꾸중을 들으셨다.
먼발치에 떨어져 있는 화장실 근처에서 캐어오시는 모습이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동생이지만 듣고 보니 틀린말이 아니어서 곧바로 수긍하셨다.
그렇지만 못내 아쉬움은 떨칠 수 없다.
원래 시골 화장실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양지바른 곳에 지어져 냉이밭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콩갱이국]
나생이가 들어간 콩갱이국은 어린시절 최애 음식이었다.
나생이는 냉이, 콩갱이는 콩국의 방언이다.
콩가루를 물에 풀어 끓이면 순두부처럼 변하는데 여기에 냉이가 들어가면 별미이다.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어머니에게서 '막내아들이 콩갱이를 좋아한다'는 말씀을 전해들은 아내가 도전장을 내어 밀었다.
냉이콩국을 끓여낸 것이다.
비록 시장에서 파는 재배한 굵직한 냉이로 끓여서 그렇지 어렵사리 비집고 나오는 자연산 냉이로 다시한번 끓여보고 싶다.
[떡취]
봄이면 시골 어디에서나 볼수있는 쑥을 베어 쑥떡을 만들기도 했다.
농사 짓고 탈곡과 도정을 하면서 나온 싸라기들로 만든 떡이다.
쑥이 들어가면 웬지 씹히는 무언가 있어 먹기에 불편하지만 나름 쑥향이 주는 묘한 맛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설흔 무렵에 내가 근무하던 고지대 산간에 '떡취'라 불리는 나물이 있었다.
이 떡취를 말렸다가 가루내어 떡을 만든 것이 취떡이라 했다.
순간 나는 쑥떡이 곧 취떡인 걸로 알고 있었는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향땅과의 작별]
흔한게 쑥이고 냉이였고, 또 주변에 갖가지 산나물들이 있었지만 고향집은 남의 땅에 집을 짓고 살았던 모양이다.
400년 세월동안 살아와서 택호가 '뒷집'일 만큼 토박이였고 과거에는 주변의 산과 땅들이 조상님들의 그것이었다는 정황으로 볼 때 집을 제외한 대지와 주변 토지들의 소유권이 남에거 넘어간 게 아닌가 생각된다.
하여튼 현재의 땅주인이 집을 비워달라고 요구했다.
나 뿐 아니라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의 어린시절 추억이 깃든 공간이건만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다.
하긴 50년이 넘도록 그자리를 지켜 준 고향땅이 고맙기도 하다.
누군가는 고향을 일찌감치 등지기도 했을테니까...
[그나물에 그밥]
깊은 산에 있는 나물과 동네 야산의 나물은 차이가 있다.
저지대 나물도 몇 가지 알지 못하던 시기에 먹는 나물과 먹지 못하는 식물을 구분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고산지대에서 곰취를 채취하려다 뻣뻗한 잡초를 한묶음 뜯었던 기억도 있고 곤드레와 미역취도 구분 못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어느 날 곰취와 닮은 곤달비 구분법을 알게 되면서 똑같이 생긴 듯 다른 나물의 구분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더우기 곰취와 흡사한 넘취까지 구분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삶아서 말린 묵나물은 도무지 구분이 안된다.
[변두리에 마련한 작은 텃밭]
나이가 들면서 내 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10여년 가까운 시간동안 열애 끝에 산꼴짜기 비탈땅을 하나 마련했다.
고향집이야 결과적으로 남의땅에 지어진 이제 보면 사상누각에 불과했다.
거름기 없는 성토지여서 처음에는 잡초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원하던 농작물도 잘 자라지 않는 척박한 토양이다.
조금씩 거름과 비료를 써가면서 2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몇몇 나물을 심기 시작했다.
[냉이는 왜 심지?]
도라지와 더덕씨를 뿌리고 곤드레, 곰취, 부지깽이 등 다양한 씨앗들을 뿌렸다.
그런데 강한 바람 때문인지 도무지 발아가 되지 않는다.
직파의 단점이 고스라니 드러난다.
그런데 자랑삼아 이야기 하다 주위로부터 적지 않은 핀잔을 들었다.
온 천지사방에 자생하는 냉이를 왜 심었냐고?
나야 그저 잡초가 없는 땅이어서 하루바삐 냉이나물 구경하고픈 마음뿐인데....
이듬해에는 냉이와 쑥이 온 밭을 점령했다.
캐고 캐어도 소멸되지 않을만큼 엄청난 번식속도이다.
[작물과 잡초 사이]
이쯤 되고 보면 나물과 잡초에 대한 구분이 어려워 진다.
더구나 지난해에 떨어진 옥수수와 콩류, 토마토가 발아해 우후죽순처럼 자라나는 일종의 작물잡초도 근심거리가 되게 마련이다.
더구나 농작물을 심었을땐 뿌리내림과 자람에 엄청난 공을 들여야 하는데 잡초는 알아서 너무나 잘 자란다.
더구나 수삼일만에 뿌리가 퍼져서 허리가 휠 정도로 뽑기 힘들어진다.
뒤늦게 알게된 사실이지만 농작물을 심을 때 잡초에 대한 대비도 필수이다.
[다년생 나물]
이제 삼년차 텃밭농부이다.
씨를 뿌리고 한해 한해 다시 심어야 하는 작물보다는 다년생 작물을 선호하게 되었다.
곰취와 부추, 도라지나 곤드레 등이 그것이다.
어쩌면 자기네들끼리 얽히고 설키면서 웬만한 잡초쯤은 씨를 말리는 나물 종류들이다.
올 봄에는 명이나물 종근을 구해 심었다.
지난 해 두 뿌리 심었던 명이가 번식을 시작해 대견하기도 하고 텃밭영농 방식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이다.
냉이와 쑥 등의 나물들은 가장자리에 심어둔 것이면 충분하다.
지피식물로서 장마철에 둑이 무너지지 않으면 되고 봄가을엔 나물로 먹으면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