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세상

뭘 이런걸 다?

Bini(비니) 2018. 8. 2. 03:30

<뭘 이런걸 다?>


 

[지치지 않는 폭염]

 

분지 형태의 특성상 대구와 아프리카를 합성한 '대프리카'라는 신조 합성어를 접해 본 적은 있지만, 전국의 모든 지명에다가 '프리카'를 붙일 만큼 무더위의 기세가 등등하다.

다행인 것은 며칠 동안 동해안 지방에 다소 낮은 공기가 엄청난 시원함을 선사해 주는 것인데 이마저도 그야말로 하루 이틀뿐이다.

 

[연일 경신되는 기상청의 신기록]

 

아침 최저온도가 영상 25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으면 열대야라 칭하는데 이번 더위에는 열대야 정도는 뉴스거리 조차 되지 않는다.

아침 온도가 더 높은 초열대야나 열대야가 연속되는 일수가 뉴스거리일 정도로 기상 이변들은 연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산간이 많은 강원도에도 40도를 넘긴 곳이 생겨났다.

 

[재활용 아이스박스]

 

기상이변은 환경오염의 영향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럴 때엔 지구와 환경을 지키자는 이야기가 자주 대두된다.

폭염 속에서 일을 하다 보면 시원한 음료는 어쩌면 생존의 한 방편일 수 있다.

냉동실의 꽁꽁 언 얼음 생수병은 폭염 속에서 오전 중에 녹아 물로 바뀌고 오후엔 커피를 탈 수도 있을 듯하다.

저렴한 아이스박스 하나 구입하려다 환경 보호도 할 겸 흔한 스티로폼 아이스박스를 활용해 보기로 했다.

 

[붙이고 자르고 다듬고]

 

얼마 전 가까운 친구가 준 개두릅 상자가 눈에 띈다.

상당량의 개두릅도 맛나게 먹었는데 유용한 아이스박스까지 남겨 준다.

우선 강도 향상을 위해 포장용 테이프로 모서리와 아랫부분을 보강했다.

투명 테이프로는 뚜껑 부분이 아랫부분과 분리되지 않고 여닫을 수 있도록 잘 맞대어 붙였다.

 

[생고생도 팔자]

 

보기엔 흉하지만, 어느 정도 모양새가 갖춰진다.

하여간 난 머리 쓰는 게 팔자인가 보다.

별 것 아닌 건데 뿌듯해진다.

시중에 파는 아이스박스는 비싸기도 하지만 보온성이 스치로프 박스에 미치지 못한다.

완성된 박스에 마지막으로 손잡이를 설치하고 아이스팩과 냉동 생수, 그리고 냉장 생수 하나를 채워 조심스레 뚜껑을 덮는다.

 

[첫 개봉박두]

 

요즘 부쩍 잦아진 현장 순회 업무 때문에 일찍부터 출장이다.

시골 몇몇 골짜기들을 돌아다니다가 실개천이 흐르는 도롯가에서 개봉한다.

아이스박스 속은 얼음 생수와 아이스팩의 냉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생수 역시 시원하다.

얼음 같은 시원함과 알 수 없는 뿌듯함을 느끼며 차를 출발하려는데 후사경에 웬 남자가 나타난다.

 

[뭘 이런걸 다......]

 

창문을 내리자 도로를 건너 온 그의 손에 음료수 한 병이 들려있다.

더운데 이것 좀 드시라며......

알로에 음료이다.

조금은 당황스럽다.

생면부지의 남이고 나는 회사일을 하는 입장이다.

고마워서 어쩔 줄 모르는 나를 뒤로 하고 그는 다시 도로를 건넌다.

음식점 주인이다.

 

[갑자기 쏟아지는 짧은 소낙비]

 

성주식당이라는 음식점인데 휴가철이어서 그런지 엄청 붐빈다.

곤드레밥이 주 메뉴이다.

저 음식점의 곤드레밥은 엄청 맛날 것 같다.

조만간 맛보러 가야겠다.

다음 행선지를 향해 5분 정도 이동을 하는데 소낙비가 쏟아진다.

무더위도 식혀 줄 소낙비이다.

하지만 난 이미 마음의 소낙비를 맞은 사람이다.

아주 청량하고 시원한......

 

[꼭 받기 위해 주는건]

 

얼마 전에 있었던 영월의 한 시골마을에서도 땡볓 아래 땀 흘리며 일하는 내게 생수병에 담은 시원한 수돗물 한 병을 건넨 아주머니가 있었다.

얼마 후 평창 대화에서는 정자각에서 쉬는 노인들을 위해 내가 쿨피스 두어 개를 건넸었다.

오늘 받은 음료는 아직 아이스박스에 담겨 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서로 나누는 것......

이런 게 시골의 진정한 청량음료인 듯하다.

 

[돈과 맞바꿀 수 없는 것]

 

요즘 무더위가 계속되면서 온열질환자가 증가한다고 한다.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사람 간의 정이 깊어가는 모양이다.

각종의 무더위 탈진 증상이 기승인데 폭염을 식혀 줄 따듯한? 아니 시원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금전을 따지지 않는, 작은 사람 간의 정을 느끼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강원도 시골 마을이어서가 아닌 우리네 옛 정이 부활하고 있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