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콩나물 시루
<깨진 콩나물 시루>
[새싹 재배기]
요즘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새싹채소의 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새 생명의 에너지를 섭취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욕구에 발맞추어 참으로 다양한 새싹채소가 출시된다.
그런데 신선도와 농약 사용 여부가 걱정이다.
보다 안전하고 신선한 새싹채소는 없을까?
인터넷 사이트에 많은 새싹채소재배기가 판매되고 있다.
에어펌프로 자동 물 주기 까지 가능하다.
큰마음먹고 하나 장만했다.
메밀 싹을 조금 불려 균일하게 깔고 전기 스위치를 켠다.
힘차게 돌아가는 물줄기에 메밀 싹들은 한쪽으로 모이기 일쑤이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농경 재배? 수경 재배?]
길쭉한 화분에 배추 모종을 심어 베란다에 올려놓았다.
화분의 흙은 앞산에서 퍼 온 푸석한 마사토이다.
영양분이라곤 없는지 도무지 배추가 자라지 않는다.
물을 주면 그때뿐, 금세 화분 아래로 빠져나간다.
그래도 매일같이 부지런히 물을 준 덕택에 일주일에 한두 번 신선한 배춧잎을 수확한다.
가끔은 상추 모종도 심는다.
베란다의 작은 텃밭인 셈이다.
하루에 한 번씩 물을 주는 배추 농사는 수경 재배일까? 농경 재배일까?
[깨진 콩나물시루]
시골 외가에 가면 언제나 외할머니가 반갑게 맞아 주신다.
'우리 햇가무들 왔구나, 빨리 들어와'
나이 열 살이 되어도 어린아이라는 '햇가무'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일찍 얻은 맏딸의 자식이었으니 얼마나 귀할까? 생각이 드는 건 오랜 세월이 지나 나이가 든 후이다.
외할머니댁 좁은 방에는 항상 시루 하나가 놓여 있었다.
콩나물을 길러 반찬거리라도 해결하던 시절이어서 특별할 건 없지만 금이 간 시루에 길게 시멘트를 발라 조심스레 사용하는 것이다.
물만 주면 잘 자라는 게 콩나물이지만 물을 제때 주지 않으면 실패하기 쉽다.
밤잠이 적으셨던 외할머니는 밤새 몇 번이고 물을 주시고 시루 아래로 떨어지는 물소리는 그칠 줄 모른다.
[채소 불고기와 콩나물]
모처럼 집에서 가족을 위해 채소 불고기를 만들기로 했다.
서너 번 만들어 이제는 나만의 레시피가 완성되었다.
얇은 대패 삼겹살을 대패 세 겹을 구워 기름기를 뺀 후 양념 소스에 재운 대파와 채소류 등을 얹어 구워 먹는 일명'시오야끼'이다.
처음엔 음식점에서 먹어 보고 호기심에 집에서 조리해 가족들과 즐겼을 때 의외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두 번째 도전은 재료에 콩나물을 추가했다.
고깃집에서 밥 볶음을 주문하면 콩나물무침을 함께 볶아 주는 것에 착안했다.
이거 생각보다 훌륭하다.
세 번째 도전은 명품 채소 불고기의 완성이었다.
마트에서 굵직한 찜용 콩나물을 발견한 것이다.
사실 가느다란 콩나물이 익으면서 실처럼 가늘어져 식감이 별로였는데 찜용 콩나물은 탱탱함이 있다.
[자작 전자동 수경재배기]
11시를 넘긴 시간 아파트 공원에서 힘찬 전동공구 소리가 난다.
플라스틱 파이프를 자르고 구멍 뚫고 하면서 땀을 흘리고 있다.
제대로 된 수경재배기를 장만해야 하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 직접 만들기로 했다.
파이프로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굵은 파이프를 올려 종이컵 크기의 구멍을 뚫어 수경재배용 포트를 올리면 골조 공사는 완성이다.
여기에 물 공급과 배수가 자동으로 이루어져야 하므로 호스와 펌프도 필요하다.
사실 재료를 구입한 다음 날 회사에서 대규모 특별명퇴가 발표되었다.
이러저러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때 명퇴 고민을 잊게 한 것이 수경재배기 자작 작업이었다.
완성된 수경재배기를 뿌듯하게 바라볼 무렵 명퇴 신청은 예정보다 이틀 일찍 조기 마감되었다.
[양파순 라면]
이십 대 중반 무렵 총각 때 시골에서 자취하던 시절이었다.
대선배 내외가 거처하는 기와집 작은방을 빌려 자취를 했다.
말이 자취였지 또래 동료들과 술로 배를 채울 때가 태반이었다.
아들 같은 나이의 내가 안쓰러운지 선배의 부인은 자주 내 끼니를 챙겨 주었다.
선배의 집에는 고급 유리잔에 무언가 많이 기르고 있었다.
물을 조금 붓고 당근과 미나리 등 다양한 식물들이 수경으로 재배되고 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플라스틱 컵 하나를 꺼내어 물을 반쯤 채우고 양파 하나를 올렸다.
여기에서 싹이 나면 앞으로 대파 구입은 하지 않아도 된다.
사나흘 후에 싹을 틔운 양파는 금세 자라더니 줄기가 옆으로 고꾸라진다.
'역시 난 천재야' 하는 생각으로 양파라면을 끓인다.
기대를 가득 안고 시식하려는 찰나, 형언할 수 없는 맛의 세계가 펼쳐진다.
'역시 난 안돼'
[유리병에 들어간 배]
나이 오십을 넘기면서 건강에 적신호가 하나둘 아니다.
몸에 좋다는 것도 조금씩 챙겨 먹어야 한다.
평창으로 발령 난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산양삼 판매점이 눈에 띄었다.
석 달을 벼르고 벼르다 시세나 알아본다며 판매점에 들어갔다.
인상 좋은 주인은 국유림을 빌려 직접 재배하는 농부이기도 했다.
잠시 내 질문에 자세히 답하던 그는 상품성이 떨어지는 작은 산양삼 두 뿌리를 건넨다.
이거 먹어도 되나 싶은데 "걱정하지 말고 드세요, 구매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며 상품 종류별 가격을 알려준다.
생각보다는 저렴하다.
여자들에게 특히 좋다는 말에 한 상자 샀다.
돌아서 나오려는데 둥근 공 모양의 유리병에 커다란 배 하나가 담겨 있다.
이건 어떻게 넣은 거냐고 신기한 듯 물었다.
"아! 이건 배가 작을 때 유리병을 씌워 키운 겁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들었던 일화가 생각난다.
미국 항공우주국 NASA 연구원이 냉장고의 페트병 속 얼음을 보고 아내에게 "이거 어찌 넣은 거요?"라고 물어 아내를 당황케 했다는 이야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