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버섯과 맞바꾼 안타까운 목슴]
동해안 산간 지역은 유독 소나무가 잘 가꾸어져 있다.
소나무 아래에선 송이버섯이 자라고 엄청난 고가의 수입원이 되기에 송이철만 되면 다툼이 생기기 일쑤였다.
개인이 소유한 산이나 국가 소유의 송이산을 임대하고 출입을 통제하는 나이론줄과 경고문이 온 산을 둘러싼다.
1990년대 중반 동해안에 좌초된 잠수함에서 내린 무장간첩이 온 나라를 들썩이게한 사건이 있었다.
무장간첩 소탕을 위해 군인 수만명이 수색을 하던 시기였는데 때마침 송이철과 맞물려 송이수확을 하지 못해 애태우고 있었다.
어느 날 총성과함께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조심스레 채취하러 들어간 주민이 오인사격에 피해를 본 모양이었다.
[초보 산나물꾼]
쑥과 냉이 정도를 제외하고는 도대체 나물에 대한 문외한이었던 나에게 특별한 경험이 있었다.
지금이야 국립공원에 편입되어 풀 한포기 나무 한뿌리 건들지 못하는 태백의 한 산에대한 이야기이다.
정상 부근에서 근무하던 20대 시절이다.
선배들이 운동삼아 산허리까지 다녀오면 귀한 산나물을 한포대씩 채취해 오곤했다.
내 눈엔 비슷하게 생긴 잡초일 뿐이다.
어렵사리 몇가지 생김새와 이름을 익히고 나물을 채취했지만 돌아오면 7~8할은 먹지못하는 잡초였다.
그랬던 내가 요즘은 가끔씩 주변사람에게 나물에 대한 짧은 지식을 알려주기도 한다.
사람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타산지석]
`타산지석`
인생사에서 어쩌면 가장큰 교훈중에 하나일것이다.
제법 규모가 있는 회사에서 5년차쯤 되었을때이다.
회사에서 시, 수필, 산문 등 개인이 작성한 이른바 UCC를 공모했다.
그저 무심코 '한번 작성해 볼까?' 하는 생각에 아무말대잔치처럼 글을 써내려갔다.
'남의집 산에 있는 돌 하나`라는 누구나 아는 사자성어에 무언가 열심히 의미를 부여하고 학창시절 배운 의인법, 은유법, 도치법까지 동원해A4용지 한장 정도 분량을 적었다.
그리고 근무지하고 한시간 반쯤 본부에 우편으로 발송했다.

[발표불안]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그저 잊고 지냈는데 분기에 한번씩 열리는 본부회의에 참석하라고 연락이 왔다.
지난번 제출한 작품(?)을 발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 세명이 단상에 서야하는데 무슨 날벼락이람?
항상 열명 이내의 사람들과 근무하다가 100명이 넘는 청중들 앞에서 발표라니....
그것도 아버지뻘 되는 선배님들도 여럿 계신다.
다행인건 논문 성격이 아니어서 읽기만 하면된다.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읽어내려 간다.
조금 여유가 생기자 원고에 조금씩 살을 붙이기도 한다.
[낯선 목소리]
회의가 끝나고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발표대상자로 선정된 이유가 가관이다.
정확히 알수 없지만 응모자가 몇 안되었던 모양이다.
고령의 선배님-당시만 해도 그렇게 느낌-이 힘들었던 직장생활을 회상하는 글을 발표하신 이후 다음순서로 내차례였으니....
저녁시간 회식장소에 참석했다.
괜한 응모와 서툰 발표솜씨를 한탄하자 주변 동료나 선배님들로부터 격려의 메세지가 쏱아진다.
하긴 녹음기에 녹음한 내 목소리가 낯설게 느껴지는것 마냥 내가 느낀 떨린 목소리는 나만 느꼈을수도 있는 모양이다.
[가난한 집 소갈비]
시골에서 유년기부터 자랐던 나로서는 당연한 단어였지만 같은 지역의 친구들조차 잘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가 있다.
지금이야 전기나 가스가 연료로 사용되지만 예전 1970년대엔 부잣집에서나 석유와 연탄이 주된 연료였다.
시골집 뒷산에는 소나무와 아카시아가 많았는데 마른솔잎과 나뭇가지가 땔감이었다.
솔잎 낙엽을 소갈비라 불렀다.
서해안에서 시집오신 큰형수님이 소갈비 끌어오란 시어머니 말씀에 좋다말았다는 우스겟 농담을 할 정도였다.
[음복! 복을 나눈다]
요즘은 점차 희미해져 가는 풍습이지만 종가집이었던 어릴적엔 제사가 10번이 넘었었다.
설, 추석은 물론이고 단오, 동지, 기제사와 최대 9분의 제사를 모시던 때도 있었다.
없는 살림에 부모님들의 삶이 더 힘드셨겠지만 당시엔 누구나 받아들일때였다.
제사가 끝나면 음식을 먹는 재미에 이른 새벽제사를 위해 잠을 쫓다가 12시쯤 되면 결국 잠들곤 했었다.
친척어르신들은 제사상에 올렸던 제주를 나누어 드시며 `복을나눈다`고 입버릇처럼 되내이곤 하셨다.
요즘이야 먹거리가 풍성해지면서 제사음식에 눈길을 주지 않지만 감자와 보리밥이 주식이던 그시절 쌀밥 한그릇만으로도 진짜 복을 나눈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