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보따리

5년만의 기차여행!

Bini(비니) 2016. 7. 16. 21:50

<5년만의 기차여행! 2016. 7.13>



[5년 만의 기차여행!]


갑작스러운 출장으로 인해 원주발 청량리행 열차에 올랐다.

가장 최근에 이용했던 열차가 태백산을 오르기 위해 강릉발 태백행 열차였고 수도권 전철을 포함하면 2년 전 서울역에서 수원까지의 구간이었다.

주변 신경 쓸 필요 없는 안전한 교통수단이라고들 하는데 나는 항상 어색하고 불편하다.

앞으로 동서고속전철이 개통될 2017년엔 좀 달라지려나?


[열차를 이용하기 어려운 지리적 특성]


강원도 동해안은 태백을 거쳐 동해를 거쳐 강릉을 종착역으로 하는 상당한 우회 코스이다.

고속버스가 처음 도입된 1974년 이전까지만 해도 강릉에서 서울로 향하는 가장 대중적인 교통수단은 열차임이 틀림없었다.

영동고속도로 개통 전 비포장도로에는 흙먼지 흩날리며 완행버스가 구비 길을 돌아 힘겹게 언덕길을 오르내렸었다.

고속버스와 자가용 승용차가 보급된 요즈음엔 더구나 열차 이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원주나 서울 방면보다는 강릉에서 태백이나 대구, 부산에 갈 땐 그래도 좀 이용하는 편이다.


[첫 기차여행의 추억]


1990년대 초반 개인용 승용차도 귀하고 버스가 다니는 국도 포장도 부실하던 시기에 강릉과 태백을 오가는 출퇴근을 위해 처음 열차를 이용한 적 있었다.

아침 6시에 출발하는 동대구행 통일호 열차와 6시 10분 출발하는 청량리행 비둘기호 열차가 있었다.

당시엔 등급별로 나뉘어 비둘기호는 간이역까지 정차하는 완행열차였으며 통일호가 중급, 무궁화호가 고급 열차였으니까 KTX가 주 교통수단인 요즈음 생각하면 참으로 천지개벽이 아닐 수 없겠다.

 

[남쪽으로 갈수록 강한 경상도 사투리]


당시 시끄러운 열차에서 잠시 졸다가 깨어나면 어느 역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역마다 사투리 차이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강릉은 북한말과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특유의 억양인 데 반해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경북지역의 사투리가 강해진다.

묵호역과 북평역을 지나 삼척 도계에 도달하면 거센 경상도 사투리에 마치 싸움판을 방불케 하곤 했다.

간이역들을 지나 통리역에 도착하면 5일장이 크게 선다.

장날 새벽 기차는 강원도와 경상도의 집합체랄까?


[열차도 가끔은 교통사고가]


화창한 어느 봄날이었다.

열차를 타고 퇴근하던 중 사고가 발생했다.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이었기에 다소 어리둥절했었다.

강원도 태백에서 동해를 향하던 열차가 갑자기 신기라고 하는 간이역에 정차한 것이었다.

승객의 승하차가 목적이 아니라 1시간 이상을 지체한 후에야 움직일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철로 위를 가로지르는 교량 위에서 화물차가 전복되어 전기가 끊어져 인근 동해역에서 기관차가 출동해 객차를 견인해 움직이게 된 것이었다.

전철도 이러한 단점이 있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했던 시절이었다.


[금세 친해질 수 있는 서민들의 공간]


열차가 멈춰 서자 모든 사람들이 창 밖으로 머리를 내어 밀고 주변을 둘러봤다.

요즘은 에어콘이 잘 되어 있어 버스나 열차 모두 창문이 없지만 당시엔 창문을 열면 강호동도 창문으로 내릴 수 있을 정도였다.

요즘 국민 1인당 한대 이상 들고 다니던 흔한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휴대전화 한 대 없던 시절이었으니 그저 먼 산 바라보며 무한장으로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많지 않은 승객 가운데 또래로 보이는 20대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외갓 여자에게 말 한마디 걸지 못하던 나로서는 크나큰 용기가 필여할 법 한데 이 적막한 기다림을 멈추기 위해 용기를 냈다.

가벼운 통성명과 함께 출발지와 행선지 정도가 주고 받은 대화의 전부였지만 지나치는 사람들과 가벼운 대화라도 가능한 것이 열차만의 특징이 아닐까 생각된다.


[국내 유일의 스위치백]


급경사 오르막 길을 오르기에는 기관차 힘이 딸리던 시절에 언덕길을 오르다가 반대방향으로, 다시 한번 오른 방향으로 진행하는 선로가 스위치백이다.

처음 오는 승객을 위해 안내해 주는 방송멘트가 신기했는데 자주 이용하다 보니까 이젠 '뭘 저런걸 굳이 알려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여년이 지난 이제는 지하터널을 뚫어 크게 원을 그리면서 올라간다고 하니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유일의 스위치백은 이제 스위치백리조트로 개발되어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아내와의 결혼 전 태백산행]


결혼 전 연애시절 열차를 타고 태백에 다녀 왔다.
 

태백산 등산을 위해서였다.

겨울 함백산은 무릎까지 빠지는 눈밭을 지나야 한다.

정상 부근에 눈송이 이고 있는 주목의 장관을 감상하려면 등산장구가 필수였다.

아내는 운동화 수준의 복장으로 무조건 따라나섰기에 양말까지 젖어 열차에서 시린 발을 호소했다.

냉방도 난방도 부실하던 시기, 젖은 양말에 울상이었던 스물 네살의 아내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 듯.


[지하철 숙박 이용기]


회사 노사분규가 한창이던 시절 서울에서 시가 홍보전을 위해 1박2일 연속 시위를 한 적 있었다.

300여명 인원이 묵기에 적당한 장소가 마땅치 않았는데 때마침 서울지하철노조에서 정비기지에 정차중인 객차를 이용하도록 주선해 주었다.

객차 1량당 가격이 6억 정도라고 하는데 50여명이 신문디 깔고 나름 편히 쉬었으니 고가의 호텔을 저렴하게 이용 했다 해야할지?


[노약자석에서 눈치보며....]


청량리로 가기 위해 5호선 열차를 탔다.

조금은 이른 시간이어서 빈자리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약삭빠른 이들에게 양보하고 노약자석 옆에 서 있었다.

원래 열차 양쪽이 시원하기도 하지만 출입하는 사람에게 피해 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노약자석에 앉은 노인 한 분이 앉으라고 한다.

아무도 없어도 노약자석은 비워 두는게 맞는데 스마트폰 사용법을 설명해 달라고 하여 하는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소리 크기와 화면 밝기를 조정하고 설명해 드리는데 8순의 노인 한 분이 자리를 비켜달랜다.

얼른 일어났더니 이번엔 스마트폰 주인이 자리를 좁히 앉고는 다시 앉으라고......

불편한 마음에 서너 전철역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쉽지 않은 지하철 환승]


빠른 코스를 찾기 위해 지도앱을 수시로 업데이트 했다.

5호선을 타고 예닐곱 정거장을 지나 경의중앙선을 갈아타기 위해 한참을 헤매었다.

꼼꼼하게 안내표지를 살폈는데 갑자기 사라진 청량리 방면 안내표지이다.

그냥 타려고 하다 마침 안내원 한 명이 보였다.

아는 길도 물어 가랬는데 하며 물어 봤는데 반대쪽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층 올라가서 타랜다.

지하2층에서 표지판을 놓치고 지하3충을 내려 온 모양이다.

한데 내가 너무 시골티를 낸건지 아님 65세 이상으로 본건지?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어! 열차엔 안전벨트가 없네]


승용차는 물론이고 시외버스도 고속도로에선 안전벨트 착용이 의무화 된지 오래이다.

그런데 열차 객차에 타고 보니까 안전벨트가 없는 것이었다.

지하철은 입석 위주라서 이해가 가는데 간혹 선로사고를 접하면서 안전벨트의 필요성이 대두되지 않았는지......

선로 자체가 안전하고 속도가 빠르지 않은 열차라서 그러려니 생각하니 별 소용 없는 걱정을 한 것 같아 웃음이 난다.


[고속전철 이용은 언제나 할까]


어떤 사람들은 KTX라는 고속전철을 자주 이용한다고 하는데 같은 나라의 다른 시민들 이야기이다.

출발지도 목적지도 KTX 노선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동계올림픽이 개최되면 강원도 방향으로 고속철도가 개통된다는데 그땐 원 없이 타 봐야겠다.


[어린시절의 추억 가시랑차]


시골의 놀이 시설이 딱히 없을 때 옆동네를 지나는 열차 선로에 자주 가곤 했다.

철로 주변에 사람이 통행을 하면 안되는데 작은 못 따위를 선로 위에 올려 두면 열차 무게에 의해 납작해 지는게 신기해서 자주 갔었다.

열차가 지나간 뒤 납작해진 못을 찾는 것도 재미 있는 놀이였다.

마치 보물찾기 마냥......

그러다가 간혹 가시랑차를 만나곤 했다.

사람이 핸들을 움직여 이동하는 무동력 가시랑차는 선로 보수에 동원되어 지며 철로 주변을 배회하던 우리들에겐 마치 일제강점기 순사처럼 무시무시 했었다.


[열차를 향한 팔뚝질에 대한 점잖은 훈계]


논두렁에서 쥐불놀이를 하다가 때마침 지나가는 열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당시엔 아무 이유 없이 서로가 손을 흔들 때 였다.

그런데 친구들 중 몇몇이 갑자기 팔뚝질을 시작했다.

장난 삼아 시작한 팔뚝질은 이내 모두에게 전염되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건장한 사내가 자전거를 타고 다가왔다.

'아까 팔뚝질한 게 너희들이지?'

그러고 보니까 기차역에서 내려 자전거로 쫓아 온 모양이다.

많이 화나고 억울해 30분이 넘는 시간을 자전거로 달려 왔을텐데 앞으로 그러지 말라며 점잖게 훈계하고 돌아갔다.

 

[여성 전용 지하철]

 

한 때 지하철에 여성 전용 객차가 있었을 때 모처럼 상경했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여성 전용 객차에 탔다.

주변에 온통 여자 승객들만 있다고 생각은 들었지만 따가운 눈총은 느끼지 못했었다.

열차에서 내린 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하긴 여자 화장실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