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든 칼국수 버리랴?>
강원도 태백에서 자취 생활을 시작할 때의 이야기이다.
나이 서른이 다 되어 처음 시작한 자취 생활을 위해 갖은 식기와 식재료를 구입했다.
냉장고에 반찬거리를 잔뜩 채우고 쌀과 소주도 넉넉하게 준비했다.
두꺼운 요리책도 하나 장만했다.
그렇지만 요리책에서 찾아볼 수 없는 메뉴가 자주 등장한다.
바로 라면이다.
적당하게 물만 부으면 일정한 맛을 보증하는 대견한 녀석이다.
밤새워 마신 소주에 시달린 속도 풀어주는 좋은 메뉴인데 사실은 속을 망가뜨리는 주범이다.
하루는 밥을 지으려다가 싱크대 아래 밀가루 봉지가 눈에 띈다.
문득 시골집에서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칼국수가 생각난다.
'갑자기 결정된 오늘 저녁 메뉴는 칼국수이다.'
솜씨 한번 발휘하겠다고 양팔을 걷어붙인다.
밀가루를 담고 물을 적당히 섞으면서 반죽을 한다.
물과 밀가루가 번갈아 조금씩 추가되며 어렵사리 반죽이 완성되었다.
밥상에 신문지를 깔고 맥주병을 홍두깨 삼아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편다.
신문지나 병에 묻지 않도록 밀가루를 수시로 뿌려 줘야 한다.
어느 정도 두께가 얇아진 반죽을 여러 번 접고 주방 칼로 얇게 썬다.
제법 칼국수 면발을 닮아간다.
마지막으로 밀가루를 흩뿌리고 면발과 고루 섞어 주면 주재료인 칼국수 면 완성이다.
냄비에 물을 붓고 약간의 소금과 고춧가루를 풀어 간을 맞춘다.
감자를 채 썰어 넣고 물을 끓인다.
달걀과 대파도 준비한다.
평소 끼니를 얻어먹기만 했던 이웃들을 불러 모았다.
유일한 총각인 나를 챙겨 준 선배들의 아내들이다.
초대받은 손님들 앞에 뿌듯한 마음으로 가득 담은 칼국수가 놓였다.
마치 중간고사를 보고 성적표를 기다리는 심정이랄까?
그런데 시식한 후의 표정들이 일그러진다.
급기야 다들 수저를 내려놓는다.
"이거 상한 밀가루인데?"
나는 믿을 수 없어 수저를 들고 직접 맛보기로 했다.
상했다기보다는 밀가루 특유의 내음이 고약하다.
"이거 왜 이러지? 밀가루 사 온 지 얼마 안 되는데"
그런데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밀가루는 냉동보관이 필수란다.
어렵사리 준비한 칼국수.......
공든 칼국수도 때로는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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