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제법 고구마 맛이

Bini(비니) 2021. 11. 14. 00:56
<고구마에서 고구마 맛이라....>

[늦깎이 초보 농부의 늦깎이 농사]

작물 재배 적기를 조금 넘긴 시기에 장만한 땅이다.
그것도 거름기라고 전혀 없는 성토지이다.
고추도 토마토도 작은딸이 좋아하는 수박도 심을 시기가 아예 지나친 6월 중순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늦작물을 둘러보니 몇몇 종류가 눈에 띈다.
종묘상을 둘러보고 인터넷도 뒤적여서 나름 임기응변처럼 선택한 농작물들....
식용의 서리태콩과 팥, 종자로 남겨 둔 들깨와 옥수수도 얻었다.
농사 첫해라서 시험 재배만으로도 만족한다.

[모종과 파종, 식재]

시원한 6월 초....
우선 검은 비닐을 장만하고 무작정 비닐 멀칭을 만들었다.
비닐 멀칭에는 고구마 두 줄을 심었다.
지역 종묘상에서 사라진 고구마 모종은 인터넷에서 구입했다.
그것도 충남에서 파는 꿀고구마라 하는데 중부지방에 맞는지 의문이다.
200여 포기를 구입한 탓에 멀칭이 안 된 고랑까지 심어야 한다.
이거 뿌리가 내릴 것 같지 않은데 배운 대로 심는다.
작년에 식용으로 샀던 서리태를 밭두렁에 두어 줄 심었다.
옥수수와 들깨도 파종했다.
대파 모종까지 서너 줄 심었다.

[생각지도 않은 소출 예감]

토질이 안 좋은 것은 감안하겠지만 도무지 작물이 성장하지 않는다.
이웃 옥수수는 수확이 한창이고 고구마 줄기도 활기차게 자라는데 이거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다행인 건 다섯 포기 심은 오이와 세 포기 심은 호박이 띄엄띄엄 결실을 제공한다.
적상추와 청상추는 잎이 너무 작아 상추쌈이 아니라 삼겹쌈에 상추를 얹어 먹는 수준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리태 줄기에 하얀 꽃잎이 모습을 드러내고 들깨도 제법 자란다.
옥수수 꼭대기에 수꽃대가 펼쳐진다.
기다림 끝에 이룬 결실이다.
비록 작물 수확은 아니지만 무언가 가능성은 보여준다.

[수해복구]

일기예보가 빗나갔는지 어느 폭우가 내리던 날....
이웃집에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
불어난 빗물에 의해 밭둑이 무너지고 다 쓸려나갔다는 비보였다.
급히 현장에 도착해 보니 앞이 보이지 않는 물난리 피해가 찾아왔다.
이제 막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구구마 뿌리가 허공에 노출되고 오이와 호박 뿌리는 공중부양을 하고 있다.
무너진 둑을 쌓고 배수로를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까 폭우에 대비하지 못한 내 불찰이 크다.
한번 만들어진 물길은 적은 비에도 자주 패이고 토사가 유실되기 일쑤이다.
이젠 비만 오면 마음이 밭에 가 있다.

[서리태를 심었는데 검은콩이....]

마트에서 식용으로 산 서리태를 두세 알씩 심었었다.
땅을 사고 수삼일만에 심은거라 어쩌면 첫 파종이다.
수해복구가 이어지던 어느 날....
서리태에 하이얀 꽃이 피기 시작한다.
'이러다가 진짜로 콩이 달리는거 아닐까?'
열흘 가량 지나고 콩꼬투리 형태가 모습을 드러낸다.
서리태가 결실을 하나 보다.
그런데 일부만이지 다른 녀석들은 꽃이 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시 열흘이 지나자 맞힌 콩꼬투리에 작은 알갱이가 만져진다.
콩이다.
그런데 꽃이 피지 않던 녀석들에게서 보라색 꽃이 피기 시작한다.
알고보니 흰 꽃은 그냥 깜장콩이고 보라빛 꽃이 서리태인가보다.

[전화위복]

늦가을이면 수로작업과 평탄화 작업을 할 예정이다.
가급적 농작물을 수확한 뒤였으면 좋겠다.
다행히도 시기를 놓쳐 어쩔 수 없이 심은 옥수수가 제법 맛나서 가까운 가족 지인들과 조금씩 나눔하고 호박과 오이도 맛은 봤다.
그리고 들깨잎과 쌈채류도 조금씩 맛보았다.
그런데 서리태는 서리가 내려야 수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서리 내리기 전에 공사가 시작되어야하는데....
다행인 것은 서리태로 알고 심은 검은콩은 수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마트에서 서리태라 속이고(?) 섞어 판 검은콩이 전화위복이 될줄이야....

[팥농사가 쉽네(?)]

서리태와 옥수수를 심고 마지막에 팥을 조금 심었었다.
이것 역시 마트에서 파는 식용잡곡이다.
호미로 대충 파고 뿌렸던 팥은 너무 베게 심어서 일부 솎아 이식까지 했다.
노란 꽃을 드러낸 후 벌레모양의 길다란 꼬투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팥꼬투리이다.
'농사란 게 별거 아니구나'
그런데 복병이 생겼다.
팥이 여물어가던 중 벌레와 곰팡이가 출몰했다.
크지도 않고 마르거나 썩기까지 한다.
무농약 농사는 어느 작물이든 불가능한 모양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식용팥은 소독이 안된 상태여서 곰팡이균과 유충이 발병하는 모양이다.
게다가 베게 심은 팥들은 서로 줄기가 교차되고 가을장마에 더더욱 피해가 큰 모양이다.

[들깨 말리는 향기]

하얀 꽃잎을 흩날리던 들깨잎이 떨어지면서 깨방이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손톱으로 벌리자 짙은 들깨향의 짙회색 깨알이 보인다.
까딱 잘못하면 수확시기를 놓치게 된다.
서둘러 베어 미리 묶어 둔 밧줄에 매달았다.
비가 오면 제대로 마르지 않을 것 같아 바닥에 깔아 둔 천막 일부를 밧줄 위로 덮는 수고로움까지....
이웃에서 밭일을 하던 분이 한마디 거든다.
'농사일 제대로 배우신 모양이네요'
초보농부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는 한마디였다.
향기는 무척 짙지만 수확까지의 과정은 무지 험난하겠지?

[김장배추 파종 도전]

대파 모종을 사면서 나도 한 번 파종을 해보자며 보관했던 모종판에 김장배추 종자를 심기로 했다.
마사토와 계분을 대충 섞고 품종도 모르는 종자 한 봉을 파종했다.
손으로 하는 작업이라서 어떤 포트는 하나, 어떤 포트는 대여섯개의 씨앗이 떨어진다.
여기에 물을 주면 씨앗이 떠다니기까지 한다.
역시 농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떡잎이 보이고 배추잎이 올라오면서 포트마다 하나씩만 남기고 솎아줬다.
비가 안오면 가끔 물도 한번씩 주고....
그러다 한동안 살펴보지 않았더니 손톱만한 배추잎들이 모기장이 되어있다.
벌레가 출몰한 것이다.
급히 살충제를 뿌리자 손톱보다 길다란 벌레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배추흉년 탈출?]

8월말이 배추 정식에 필요한 시한이란 말에 형편 없는 모종이지만 정식을 했다.
비료와 계분을 살포하고 삽으로 흙을 뒤섞은 뒤 작은 두둑도 만들었다.
겨울을 앞둔 마지막 농삿일이다.
성심성의껏 모종을 심었다.
그런데 뿌리를 감싼 흙이 별로 없다.
하는 수 없이 종묘상에서 제대뢰 된 배추모종 스무포기를 샀다.
이미 심은 배추 사이사이에 심었다.
먼저 심은 배추는 배추구실을 못할 게 분명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배추잎이 자라나더니 제법 결구까지 시작된다.
먼저 심은 비실비실한 배추도 이젠 어엿한 배추잎이다.
솎음배추도 제법 수확하기 시작한다.
다만 먼저 심은 이웃 농가들마다 배추에 병이 찾아왔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고구마에서 고구마 맛이]

늦게 심을 작물중 하나가 고구마였다.
그런데 이미 시기를 놓친, 지역 종묘사에는 자취를 감춘 고구마 모종을 인터넷으로 구입했다.
그것도 100포기 두 단이다.
비닐멀칭 두 골에 심고도 남는 모종은 딱딱한 마사토에 심었다.
늦게 심은데다 설상가상 거름기 없는 밭이라서 뿌리를 내리기도 힘겨워보인다.
장마를 지나면서 제법 잎과 줄기가 뻣쳤고 주워들은 풍월대로 순치기와 줄기자르기를 했다.
9월 중순에 시험삼아 파본 두어 포기에서 어린아이 주먹만한 고구마가 하나씩 올라왔다.
내가 심었는데 제법 고구마 맛이 난다.
하지만 9월 말과 10월 중순에도 수확량이 늘지 않는다.
맛은 고구마 맛에 가까워 진다.
'아하!
고구마는 캐서 한달 가량 숙성해야 제맛이 올라온단다.'

[서리태와 검정콩]

10월 중순을 넘기면서 잎이 떨어지던 검은콩 속알이 붉은 색으로 변한다.
하루를 말리자 이내 검은콩이 된다.
일주일 후에는 수확해야겠다.
하지만 이제 팥알만큼 만져지는 서리태는 잎만 무성하지 콩알이 연녹색이다.
보름 안에 수확이 가능하면 좋으련만....
내년엔 제대로 된 종자를 구해 심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