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상가상중에도 떠난 휴가 2009. 7.31>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언제나처럼 야심 차게 계획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가까운 태백을 다녀오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것도 아주 찜찜한 마음으로......
아파트 바닥 누수로 인해 수리를 하고 흠뻑 젖은 방바닥이 마르기를 기다리면서 집안 사정은 말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휴가라는 게 가당키나 하겠냐만 그래도 시멘트 냄새에 취해 사는 것보다 하루쯤 맑은 공기를 쐬려고 휴가 준비를 했다.
승용차를 집에서 떨어진 곳에 두고 왔기에 휴가 준비 장보기를 겸해 온 가족이 잠시 외출을 했다.
그리고 나 혼자 40여 분 만에 집으로 귀가했다.
차량 외부가 형편없어서 셀프세차장으로 가다가 내키지 않아 바로 귀가하는 길이었다.
아파트 현관문 앞에 다다른 순간 나는 어이를 상실하고 말았다.
40여 분 만에 일어난 일이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현관문 전자식 보조키 옆부분이 강제로 문을 열어 찌그러져 있었고 문은 그냥 당겨도 열리는 것이었다.
순간 수많은 생각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평생 살면서 처음 당한 일이라 아직 도둑이 방 안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 아니면 도둑이 지나간 자리라면 현장을 보존해야 하는지? 등등......
112에 전화를 걸어 범죄 신고를 했다.
그리고 혹시 바깥으로 튀어나올지 모르는 범인을 잡고자 나름대로 무기(각목)를 들고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범인은 인기척 조차 없고 먼저 나타난 것은 경찰이었다.
경찰이 선발대로 도착하고 얼마 후 '과학수사' 유니폼을 입은 현장 감식반이 도착했다.
경찰과 함께 집으로 들어 간 나는 '제발' 하는 기대감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림을 느꼈다.
집 안 상황이 온통 시멘트 바닥이어서 문만 따 보고는 이내 포기하고 되돌아 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집 안에는 장롱 속 이불이며, 쌀자루, 옷장과 심지어 아이들 서랍까지 뒤진 흔적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내 연락을 받고 허겁지겁 돌아온 아내는 도난 물품을 천천히 짚어 봤다.
큰 값어치 나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요즘 같은 시기에 팔면 돈이 될만한 18k, 14k 귀걸이가 7~8세트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것도 노란 황금색만 챙겨서......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식탁 위에 있던 현금은 그대로인데 아이들 책상 서랍의 돈-작은 아이가 보물처럼 아끼던- 9만 원이 사라진 것이다.
범인은 아마 우리 가족이 모두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짧은 순간에 들어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짚 앞 가스 검침 메모장에는 옆 집(3개월째 빈 집) 가스 검침 메모장 일부를 찢어 붙여 놓은 것으로 보아 적지 않은 기간 동안 표적으로 삼아 노린 것이 분명했다.
잃어버린 금품이 3~40여만 원 정도, 현관문도 찌그러지고 전자 도어록까지 부서져 속 상하고 찝찝한 마음에 이대로 휴가를 포기해야 하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예전에 철거해 둔 기계식 보조키를 다시 설치하고는 찌그러진 문을 망치로 폈다.
그리고 어차피 계획한 여행인데, 여행이라도 하면서 찝찝한 마음을 조금 잊어 볼까 하는 마음에 범인 잡는 일은 경찰에 맡기고 집을 떠났다.
영 내키지 않는 가족 여름휴가의 시작이었다.
강릉을 출발해 태백으로 가면서 온 가족의 머릿속은 두고 온 집의 현실뿐이었다.
언제 범인이 들어왔으며 의자를 놓고 올라서 뒤적인 것을 보아 단신이었다느니 문을 찌그러 뜨린 도구가 뭐니, 또 잃어버린 금품 목록에 대한 확인까지......
오후 다섯 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출발한지라 태백 휴가지에 도착한 시간은 6시 반이나 되었다.
시장기는 있지만 우선 마트에서 간단하게 먹을거리를 챙기고 식사 장소를 물색했다.
미리 계획한 메뉴는 유명한 태백고원한우, 태백식 닭갈비, 상황 오리탕, 송어회 등등이다.
시간 관계상 허름하지만 20여 년을 단골로 이용하던 '황가네 닭갈비'에 들렀다.
좁은 식당 안에는 서너 명의 남자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그중 두 명은 바로 일어나 밖으로 나갔, 나머지 사람들은 내가 아이들 때문에 '담배연기 타령'을 했더니 담배 피우는 횟수라도 줄이는 모습을 보였다.
가족들에게 태백식 닭갈비에 대해 미리 설명해 주었기에, 닭갈비에 대한 상상은 기대 이상이었다.
더구나 지금은 시장기가 최고조에 달한 시간이다.
강릉은 주로 춘천식 닭갈비가 유행하고, 간혹 뼈를 제거한 무뼈 닭갈비가 대세이다.
솥뚜껑에 담아 푸짐하게 내어 온 얼큰한 태백식 전골닭갈비는 우리 가족들에게 환상 그 자체였다.
거기에 전골식에만 가능한 쩔면과 라면 사리까지......
시장이 반찬으로 더해져 우리 가족들은 쉴 새 없이 얼큰한 닭갈비를 축내고 있었다.
내가 먹기에도 얼큰하다 싶은데 작은 아이가 하는 말!
매우면서도 자꾸 먹고 싶은 맛이라고 한다.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만들었다고 후식으로 내어 준 식혜 맛도 일품이다.
화학적인 방법으로 뼈를 발라 낸 무뼈가 아닌 싱싱한 닭고기를 사용하는 양질의 닭갈비라서 무뼈 닭갈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말에 좋은 맛이 더하여져서 웰빙 음식을 먹었다는 생각으로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는 태백 인근의 함백산 기슭에 자리 잡은 O2 리조트 콘도였다.
휴가차 여기 올 줄도 모르고 지난 6월에 가족들이 한번 지나쳐 본 적 있는 곳이라 험한 길이지만 손쉽게 오를 수 있었다.
날씨도 흐리고 1300여 미터 고산 지대라서 그런지 안갯속에 거대한 궁전처럼 다가오는 것이 바로 O2 리조트 타워콘도였다.
태백동과 함백동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내가 간 곳은 함백동 818호이다.
함백산 정상과 태백을 모두 볼 수 있고 골프장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아주 전망 좋은 곳이었다.
태백에 살고 있는 친구의 도움을 빌어 미리 전망 좋은 곳을 맡아 둔 덕택이다.
콘도는 넓은 거실과 침실 두 개, 욕실 두 개이며 신축 건물이라서 아주 깨끗하고 집기류도 세련되어 보인다.
잠시 여장을 풀고 주변 구경을 겸해 바람 쐬러 밖으로 나갔다.
노래방과 당구장, 사우나, 타이마사지 등 많은 시설이 눈에 띄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1층 야외에 있는 무대가 눈에 띄었고 지글거리는 요리 냄새가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원래는 라이브 공연이 있는 곳인데 쌀쌀한(7월 말임에도..) 날씨와 안개비 탓에 공연이 취소되고, 천막 속에서 맥주와 흑맥주를 즐기는 많은 이들이 보인다.
우리 가족은 바비큐와 구이 안주와 생맥주를 주문하고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천막 이래애 한쪽 면만 막힌 일종의 비막이에 지나지 않았으며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쌀쌀함이 소매 깃을 파고들었다.
다행인지 25,000원짜리 바비큐 세트는 양과 질에 있어서 풍족했다.
두세 명의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다음 날 아침!
잔뜩 흐린 날씨에 날이 밝은 것도 미처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5시가 조금 넘어 일찍 눈을 떴다.
20여 년 전, 바로 옆 함백산 정상에 근무할 당시 자주 보았던 운해를 감상할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그러나 이슬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고대하던 운해는 볼 수 없다.
먼발치에 가려져 있는 태백시내에서 보면 내가 있는 곳이 구름 속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문득 태백 날씨가 궁금해졌다.
날씨가 좋으면 가까운 곳을 몇 군데 돌아 보고픈 생각이 있었는데, 우선은 날씨가 조금 좋다고 하는 영월 방향으로 행선지를 정하고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였다.
이슬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고, 우리는 사북에 있는 강원랜드로 방향으로 향했다.
같은 강원도에 있으면서 한 번도 발길조차 주지 않았던 곳에 온 가족이 함께 첫 발을 디딘 것이다.
식사 시간이 되어 식객 세트장으로 유명한 운암정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듣던 대로 음식 값은 아주 비싼 것 같다.
어쩌면 1년에 한 번, 아니면 언제 또 이런 곳에 올까 싶어 음식 주문을 했다.
가장 저렴한 식사가 45,000원 하는 보양 설렁탕이다.
네 식구가 갔는데 너무 비싼 가격에 3인분만 주문했다.
3인분이라도 135,000원의 거금이다.
그래도 이런 곳에서 분위기 있게 대접을 받으면서 할 수 있는 식사란 게 흔치 않은 일이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했다.
가격에 비해 딸랑 몇 가지 밑반찬이었지만 고풍스러운 식당 분위기를 느끼면서 식사를 마치고 건물 내외를 돌아보았다.
운암정 바로 옆에 위치한 강원랜드에 들러 잠시 구경만 했다.
카지노는 할 줄도 모르지만 담배 연기 자욱한 곳으로 들어가기도 부담스러운 곳이다.
평일임에도 휴가철이라서 그런지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영월 별마로 천문대를 향했다.
2004년 가족들과 함께 영월 동강 근처에서 래프팅을 하기 이해 찾았다가 날씨도 그렇고 또 가까운 거리라서 다녀온 적 있는 천문대이다.
당시에는 기초 지식도 없었고 갑작스레 구경을 한 것이었기에, 이번에는 아이들한테 학습 효과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다시 가는 것이다.
오늘 다시 찾은 천문대는 산을 오르는 길도 무지 험하지만, 두번 째라 그런지 다소 낯익은 길이었고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올라갔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한다.
해발 800미터의 산 정상에 지어진 천문대에서 내려다본 영월읍과 평창 방향을 가로지르는 동강, 그리고 주변의 도로에는 피서철이라서 그런지 많은 차량들이 개미만 한 크기로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었다.
삼한사온이라는 겨울 날씨에 견줄 정도의 하루 맑고 이틀 흐리고 하던 날씨 탓에 하늘은 절반 이상이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나는 5년 전의 기억이 생생하여 그저 바람이나 쐴 목적으로 올라왔지만 아이들이 조금 궁금해하던 내부 관람까지 하기로 하였다.
입장권은 성인 5000원 청소년/어린이 4000원이었다.
밤에 별자리 관측은 망원경을 통해 잠시 해 보았지만 낮에도 무언가 볼 수 있다는 말에 입장권을 구입했는데 솔직히 믿음은 가지 않았다.
다만 전에 경험했던 별자리 여행(가상)에 의미를 조금 두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낮에 볼 수 있는 건 태양을 망원경으로 보는 것이었다.
보조관측실에서 95% 정도의 빛을 차단하는 필터를 이용하여 태양빛을 바라보는데 직시(눈으로 접안렌즈를 직접 들여다보는 방법)와 투시(태양빛을 렌즈를 거쳐 작은 스크린에 비춰 바라보는 방법)의 두 가지 망원경이 있었는데 내가 직시 망원경 렌즈를 바라볼 때에는 태양이 구름 속으로 자취를 감춘 후였다.
다시 구름 밖으로 태양이 모습을 드러 냈을 때 투시 망원경에 나타 난 태양은 도우미의 설명대로 흑점이 없는 아주 깨끗한 태양의 모습을 보여 주었으며 7년 동안 사용했다는 나무막대를 빛이 모아지는 위치에 가져다 대자 금세 연기가 피어올랐다.
태양에너지의 대단함을 느끼면서 몇 가지 설명을 더 들은 후 주관측실로 자리를 옮겼다.
멀리 바깥에서 바라본 천문대의 상부 돔이 바로 주관측실이었는데 전동 개폐장치와 360도 회전하는 형태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하늘 향해 세워져 있는 거대한 망원경은 컴퓨터를 통해 제어가 가능하며 하나의 별을 향해 설정을 하면 별의 움직임대로 자동으로 움직인다고 하니 과학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어진 시청각실에서의 태양계 행성에 대한 미디어 자료를 한참 동안 재미있게 관람한 후 별자리 여행을 위해 지하층으로 내려갔다.
언제나 그러하듯 재미난 입담으로 도우미는 알기 쉽게 설명을 해 주었고 20여 분간의 별자리 여행을 끝으로 천문대와 작별을 했다.
다시 돌아온 태백에서 조금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강원도 하면 어느 정도 알려진 한우 브랜드를 각 지역에서 고루 자랑하고 있었지만 태백한우는 오랜 역사를 지닌 먹거리임에 틀림없었다.
가는 곳마다 한우전문점이 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20여 년 전 이곳 태백에서 잠시 생활했던 나는 시장 쪽에 자리한 정육점을 겸한 실비집으로 갔다.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모둠 2인분과 육회 2인분을 시키고 소주와 음료 한 병으로 가족 만찬을 준비했다.
숯불에 구워지는 소고기는 아주 먹음직스러웠고 육회 또한 쫄깃함과 신선함이 느껴졌다.
사방을 감싼 숯불구이 한우 연기는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의 세상 사는 이야기와 어우러져 차곡차곡 추억들을 만들어 가는 듯했다.
그렇게도 그리던 구름바다.. 雲海...
장마와 저온현상이 계속되던 강원도에서도 구름 많기로 유명한 고산지대이다.
함백산 꼭대기에서 새벽 운해를 바라본 게 15년이 지난 오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해발 700미터가 넘는 태백지역에는 날씨 탓에 모기가 없기로 유명하다.
그러한 고산지대에서 쳐다보는 1600미터의 함백산은 구름에 둘러 쌓인 경우가 자주 있었고 특히 새벽시간대에 구름에 둘러 쌓인 함백산 정상에서 내려다볼 때 가끔씩은 그 구름이 운해를 이루고 있는 경우가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조금씩 바라다 보이는 작은 봉우리 몇 개가 바다 위의 섬처럼 모습을 드러내고있다.
새하얀 구름 위로는 푸르디푸른 하늘이 둘러 쌓여 있어서 그야말로 하얀 바다를 연상케 하는 절경 중의 절경인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근심이 생겼다.
집안 사정은 말이 아닐 것이다.
임시로 보조키를 바꿔 달고 2중으로 잠금장치를 잠갔지만 며칠 동안이나 집을 비운 게 못내 마음이 걸렸다.
'설상가상'
우리에게 딱 어울리는 단어 같았다.
하지만 어려움이 닥쳤을 때 절망하기보다는 어떠한 터닝포인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우리 가족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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