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와 어머니>
70년대 말 우리네 농촌 경제는 형편이 어려웠다.
시골 출신인 나로서도 고스란히 겪어 온 시절이었다.
네 살 터울의 형은 나한테 바나나 구경을 해 봤냐면서 어머니에게 학교 과제물로 바나나 두 개가 필요하다고 사 달라고 했다.
당시 바나나 가격이 500원 정도 한 거로 기억된다.
시내버스 운임이 60원 정도 하던 시절......
열무를 땀 흘려 솎아 시장에 내다 팔아 마련한 돈으로 어머니가 사 오신 바나나는 사실 별맛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금전 가치로 환산한다면 몇십만 원짜리 선물에 비길 수 있을까?
대형마트에 진열된 바나나가 눈에 띄었다.
10개 송이 가격이 3500원이었다.
문득 옛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
커다란 소보루빵 한 봉지와 함께 바나나를 들고 시골 어머니 댁으로 향했다.
이웃 노인들과 옛날이야기로 꽃을 피우신다.
내 어린 시절 쉰을 갓 넘기셨던 분들은 아흔을 바라보며 서로 기대고 나누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는 따로 상을 차렸는데 없는 살림이었어도 반찬 한 가지는 더 올리기 마련이었다.
가마솥에 밥을 하다 보면 가끔 고두밥이 되기도 했는데 그럴 때 할아버지는 밥상을 밀치면서 술밥을 어찌 먹느냐 하시기 일쑤였다.
며느리에게 큰소리 한번 친 적 없어도 우회적인 언짢음을 이렇게 표하곤 하셨다.
집안에서 가장 어른이었던 할아버지 덕분(?)에 집에는 쉼 없이 손님들이 찾아왔다.
특히 해가 바뀌는 설(당시엔 구정) 무렵엔 세배 오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없는 살림에 차릴 음식은 없고 더구나 비좁은 집에서의 손님치레는 어머니의 고단한 삶으로 자리 잡았었다.
손님치레를 위해 연중 몇 번은 집에서 막걸리를 만들어야 했고 두부와 물엿을 직접 고아야 했다.
솔잎과 싸라기, 그리고 누룩이 들어간 재료는 세월의 기다림 속에 막걸리로 탄생하였고, 맷돌에 불린 콩을 갈아 가마솥에 끓여 간수로 굳히던 두부는 간만의 먹거리였다.
물엿을 만들라치면 가마솥 가득 엿기름에 삭힌 물이 쉼 없는 휘저음을 거쳐 서서히 갈색 물엿으로 변모해 가고 있었고 장작불의 열기 탓에 아랫목 구들장은 앉아 있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한 세대가 지나가는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에겐 어린 시절의 추억이지만 구순 노인이 되어 버린 어머니는 옛날 바나나 사건은 기억하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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