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발자취

10년만의 대청봉 1전2기 등정기

Bini(비니) 2016. 6. 8. 11:36

<10년만의 대청봉 1전2기 등정기 2016. 6. 5>



[첫 '대청봉 등반'의 기억]


2006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정확하게 10년 전쯤 직장 선배를 따라 즉흥적으로 처음 올랐던 대청봉을 다시 한번 오르기 위해 벼르고 벼르다가, 두 번의 도전 끝에 몇몇 친구들과 10년 만의 재 등정에 성공했다.

꼭 오랜 세월 탓만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는 대청에서 내려다본 산하는 고된 산행을 마다치 않고 구슬땀을 흘리는 많은 애산가 들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10년 만의 첫 도전]


고교 동창 절친들과 대청봉 산행에 대한 꿈(?)을 이야기한 건 꽤 된 듯하다.

하지만 막상 이 핑계, 저 사정 따지다 보니까 속절없이 세월만 흐른 게 수삼 년......

일단 저지르자는 생각으로 SNS에 함께 할 친구를 모집한다고 공지하였다.

관심은 있지만, 공개적으로 산행을 이야기하기 곤란한 경우도 있어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함께할 친구들이 최종 확정되었다.

명색이 명산 '설악'인데 우습게 볼 수 없어 1주일 앞두고 가까운 산으로 워밍업까지 다녀왔으니 이제 D-Day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었다.


[새벽 네 시 어둠 속에 집결]


높은 산에 오르는 만큼 이른 시간에 등반을 끝내기 위해 이른 약속 시각과 장소를 잡고 마치 특공작전을 치르듯 다섯 명의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아침밥도 거른 채 출발할 것에 대비해 김밥과 간식은 전날 미리 준비해 두었기에 바로 양양을 향해 출발했다.

아직은 어슴푸레 어둠이 깔려 있어 산행에 랜턴이라도 필요할 듯하였지만 설악으로 향하는 길에는 여명이 빠르게 밝아오고 있었다.

오늘의 들머리는 애초 한계령이었는데 논의 끝에 오색분소로 최종 확정되었다.

주차장이 아닌 도롯가에 주차하고 각자 등산 장비와 준비한 먹거리를 나누어 배낭에 챙겼다.


[대청봉을 대신한 울산바위]


입산통제소 앞에서 기념사진이라도 찍으려 몇몇 친구가 길을 잡았다.

나는 주변을 정리하고 뒤따라 올랐는데 웅성거림과 함께 친구들이 되돌아오고 있었다.

5월 15일인 오늘까지 산불 예방 입산 통제가 시행된다는 것이었다.

하필이면 가는 날이 장날일까?

날짜와 코스, 함께 할 멤버 섭외까지 내가 주도했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걸 빠트렸다니.

아쉬움보다 미안함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친구들이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다른 산이라도 오르자고 했다.

다섯 명 중 세명은 선약까지 파기하고 모처럼의 산행에 함께 했다는데 인증샷은 찍어야겠기에.

'꿩 대신 닭'으로는 울산바위가 최적이었다.

코스가 너무 가볍긴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이 울산바위를 오늘만 大靑峯이 아닌 代靑峯이라 불렀다.


[일주일 전부터 주간 날씨 예보까지]


산행을 마치고 3주 후쯤에 다시 한번 대청봉에 도전하기로 했다.

두 번 실패란 없어야 하기에 이번에는 함께 할 멤버 구성은 물론 날씨까지 수시로 체크했다.

그런데 그 날 함께 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 사정이 생겨 D-day가 다가오자 세 명의 친구가 이탈하게 되었다.

다행히 산행 인원을 추가 모집하여 둔 덕분에 한 명의 친구가 합세하여 세 명의 대청봉 원정이 성사될 수 있었다.

점심식사로는 김밥이 좋을 텐데 이른 시간 출발하여 정오에 점심을 챙겨 먹어야 하므로 김밥은 상하기 쉬워 전날 판매할 수 없다고 했다.

밤 11시경 구입하여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아침에 단단히 챙겨 나왔다.

7시가 채 안된 시간에 김밥을 먹어 치워야 하는데 이른 시간이어서 뜻대로 되지 않았다.

20도 안팎의 선선한 기온 덕택인지 정상에 오른 12시 무렵에 남은 김밥을 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푸른 창공 아래에 드리운 녹음과 산 중턱에 깔린 백설 같은 운해가 어우러진 곳에 걸터앉아 김밥과 함께 마트에서 구입한 떡 몇 조각은 그야말로 꿀 맛이었다.


[대청봉 '흔들바위' 소동에 한바탕 웃음]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 긴 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한 중년 아주머니가 저게 흔들바위냐고 묻는다.

그순간 대청봉에 흔들바위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에 흠찟했다.

하지만 오해가 풀리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멀리 레이더 기지 돔 두 개를 보고 흔들바위냐고 물었던 것이다.

흔들바위와 레이더 기지는 확연하게 구별될 듯한데......

아마도 고된 등반의 고통을 씻어 내라고 우리에게 큰 웃음 준 위트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친 인간적으로 진화한 다람쥐]


높고 깊은 산이라 그런지 유독 다람쥐가 많았다.

그런데 야생의 다람쥐가 사람을 두려워 하기는 커녕 오히려 음식을 구걸하기 위해 주변을 배회한다는 것이 뜻 밖이었다.

나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볼 수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야생의 동물들이 야생성을 잃었을 때 발생할 문제점도 걱정되었다.

생존력에 대한 우려가 그것이다.

언젠가 방송에서 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라는 안내표지를 본 기억이 난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가 필요한 법이다.


[정상까지 남은 거리는 300m]


스마트폰은 속도, 거리, 길 찾기에 아주 유용하다.

나는 수시로 남은 거리와 시간을 유추해 봤다.

요즘 유행하는 '트랭글 앱'이 유용하다.

출발선상의 해발고도가 478m, 대청봉 정상이 '1708m' 이니까 남은 고도와 경사도를 계산하면 대강의 남은 거리와 시간을 알아낼 수 있었다.

해발 1400m쯤 올랐을 때 앞으로 수직 300미터를 오르려면 얼마나 남았을까? 평균 경사도 20%를 반영해 계산해 보니 1.5킬로미터 남짓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온통 머릿속에 인간지능 계산기가 작동중일 때 등산객 중 누군가 물었다.

아직도 정상까지 많이 올라가야 하냐고?

난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

"300m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빠트릴 수 없어 부연 설명해 주었다.

"수직으로 300m 높이입니다."


[입산통제 시기와 시간]


주변의 얕은 산은 입산 시간에 대한 제약이 없다.

그런데 내려오는 길에 출입통제소는 바리케이드를 반쯤 쳐 두었다.

안내원에게 물어보니까 높은 산 이어서인지 입산 시간을 제한한다고 했다.

그것도 정오인 12시까지만 입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세상 살면서 알아야 할 것도 참 많은듯하다.

까딱 잘못했다간 언제 또 헛걸음 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계절별로 출입통제 시기와 입산 가능 시간이 다르다는 것은 안전한 등산을 위해 꼭 알아야 할 정보이다.


[생리현상이 빚은 수많은 수류탄]


붐비지는 않지만 가벼운 간식이라도 즐길라 치면 넓은 공간이 필요하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험난한 산행 구간은 때론 두 사람이 교행 하기에도 빠듯한 경우가 많았고 일정 거리마다 마련해 둔 휴식 공간은 벤치가 설치되어 있지만 턱 없이 부족해 보였다.

그 와중에 어떤 이는 벤치 하나를 전세라도 낸 듯 큰 대자로 누워 휴식을 취하는 꼴불견도 연출하고 있었다.

함께 간 친구가 계곡 물소리도 들리고 넓게 펼쳐진 평탄지에서 요기나 좀 하고 가자는 제안을 하며 편히 앉을 곳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이내 다시 돌아와 불편하지만 여기서 먹고 가자고 한다.

무더위에 상할까 싶어 김밥을 꺼내어 먹으면서 친구에게 권했지만 나중에 먹겠다면서 한사코 사양했다.

사실 친구가 자리를 찾아 헤메이다 등산객이 실례를 한 그것을 보고 왔다는 것이었다.

흔히 우스겠소리로 수류탄이라고 부르는......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다.

외국인 등산객들이 많은 날이었는데 망경대라 불리는 전망 좋은 곳에 젊은 외국인 둘이 있었다.

친구가 저기 다녀 오자며 길을 잡았다.

외국 청년 둘이 급하게 돌아오며 좁은 길에서 교차해 지나쳤다.

안전 밧줄을 넘어 뒤따르려는 찰나 먼저 갔던 친구가 급하게 되돌아왔다.

못볼 걸 또 봤다며 혼다만 보고 말겠다고 했다.

오늘 벌써 두 번 째였다.

'아까 그 외국인의 소행인지? 아니면 우리나라 등산객의 소행인지?'

하여간 남북이 대치된 상황이어도 수류탄의 남발은 좋은 현상이 아닌 듯하다.


[제법 쌀쌀했던 6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5월 중순에도 내리 쬐는 태양에 땀 꽤나 흘렸었는데 기상청 예보는 '전국적으로 흐리고 최고 22도의 시원한 날씨'라고 했다.

얇은 옷차림에 팔토시 하나 챙기고 - 물론 여벌로 조끼 정도는 배낭에 챙겼지만 - 해발 1000m쯤에서 무더위를 뚫고 가파른 산을 오르고 있었다.

한 청년이 정상에 가면 반팔 옷으로는 추워서 견디기 힘들거라 했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1700m 산 정상의 기온은 여러 번 경험해 봤기에 그럴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정상을 2~3백 미터쯤 남기고 산 아래 경치를 감상하다가 정상에 올라 표석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 발걸음을 옮겼다.

이른 시간 출발을 해서인지 100여 명 남짓한 등산객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런데 사진 촬영을 위해 기다리는 시간 10여분 동안 우리는 적지 않은 추위와 배고픔에 떨어야 했다.

거센 바람이 온몸을 적셨던 땀방울을 씻어 내며 시원함을 넘어 오한까지 느끼게 했다.


[인증샷에 얽힌 사연]


30대 초반으로 뵈는 남녀 3명이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했다

여자 둘, 남자 한 명이었는데 각자 따로 찍는 모양새가 왠지 수상쩍었다.

우리 일행은 세 사람이 함께 포즈를 취하면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말했는데 한사코 사양하며 안된다고 했다.

적어도 수백리 길을 함께 왔을 법한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함께 찍으면 안 된다는 게 한편으로는 의문스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설악산 케이블카는 언제 생길까?]


천혜의 자연, 조상에게 물려받은 자연환경을 후손에게 원형 그대로 물려주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케이블카 설치는 못마땅한 처사였다.

그런데 당연하다는 듯 한 등산객이 케이블카 공사 시기와 통과 구간에 대해 불쑥 이야기를 꺼냈다.

이거 힘들어서 어디 산에 오르겠냐며 하는 말이었다.

때마침 옆에서 듣고 있던 우리 일행 셋은 약속이나 한 듯 반대 의견을 말했고 그 등산객은 마치 죄라도 지은 양 겸연쩍어했다.

장애인과 노인의 이동권, 주변 상권 보호 등의 이유를 들어 추진하는 사업이어서 찬반양론이 치열하겠지만 거시안 적 사고와 판단, 합리적 결정으로 매듭지어지길 바란다.


[10년 후에도 도전은 계속 되어야]


남들은 흔하게 오르는 설악이지만 누군가에겐 기회가 없어서 혹은 엄두가 나지 않아 등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나 또한 주변의 높고 낮은 산을 숱하게 오르고, 때론 몇몇 악산까지 등반 하면서도 설악산 4회, 그중 대청봉에 2회 밖에 오르지 못했다.

10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야 도전했던 대청봉이었기에 체력적인 면에서 우려도 있었지만 별 탈 없이 마무리 하면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앞으로 10년 후 다시 한번 도전을 계획 해 본다.

물론 그 전에도 다양한 설악의 등산 코스를 두루두루 등반해 볼 것을 스스로와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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