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으로

대견한 세퍼트!

Bini(비니) 2020. 5. 3. 08:53

[집토끼 사육]

어린 시절의 이야기이다.
장에 다녀 오신 어머니는 작은 박스를 내려 놓으며 토끼 한 쌍을 얻어 왔다며 잘 키우라고 하신다.
작은 크기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귀를 가진 붉은 눈의 집토끼이다.
시골 학교 답게 토끼장이 있고 먹이 조달을 위해 아카시아잎을 따러 다니기는 했지만 우리집에서 키울 토끼라 생각하니 각별함이 더하다.
나무상자를 이용해 대충 토끼집을 만들었다.
마침 양배추를 수확하던 계절이라서 먹잇감은 풍족하다.
때론 들풀을 베어 토끼집에 넣어 주면 눈과 귀를 요란히 움직이며 먹곤 한다.
먹거리가 풍부해서인지 무서운 속도로 자라기 시작했고 대신 검정콩을 닮은 배변량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양배추가 동이나고 먹이가 사라지자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금세 겨울이 다가오고 나면 들풀들도 사라질 터이니 더 늦기 전에 토끼를 처분해야 했다.
우선 한마리는 원 주인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그렇다면 남은 녀석은 어찌 한담?
재주가 좋은 사람들이야 닭이나 토끼를 식용으로 소비하지만 부모님중 어느 분도 그런 재주는 없으셨다.
결국 토끼 두 마리는 모두 원주인에게 돌려 주고 빈 토끼장을 바라봐야 했다.
나름 새끼 때 부터 키워 오던 녀석들의 붉게 반짝이던 눈망울이 눈에 선하다.

[대견한 세퍼드]

시골에서의 개 짖는 소리는 새벽 닭울음 소리 만큼이나 정겨운 법이다.
밤시간에 이웃집을 다녀 오려면 여러 마리의 개가 짖어대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너도 나도 가축들을 키우던 시절이었으니 시끄러워도 서로 참고 이해하는 편 이었다.
유독 우리집은 개를 키우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 거리는 개를 보면 무섭다 못해 오싹함까지 느껴진다.
그런데 사납게 생긴 경비견이 있는 곳으로 부임한 적 있다.
세퍼트라 불리는 혈통 좋은 품종이며 덩치가 사람 키와 비슷 할 정도의 대견이다.
짖는 소리도 우렁차지만 굵은 쇠줄이 끊어질 정도로 사납게 움직인다.
언제까지나 두려움에 떨 수 없어 화해의 길을 선택했다.
돼지갈비살이 조금 붙어있는 뼈다귀를 몇 개 들고 조심스레 다가갔다.
변함 없는 기세로 으르렁 거리던 녀석에게 작은 뼈다귀를 건넸다.
건넸다기 보다는 던져 주었다는 표현이 맞는 듯 하다.
지조 없는 녀석은 그 후 나를 적대시 하는 일이 사라졌다.

[사람을 공격하는 장닭]

대부분의 이들은 자기가 키우는 반려동물은 순둥이라서 공격하지 않는다 생각한다.
당연히 주인을 물지는 않겠지?
하지만 간혹 주인까지 물리는 모습을 본다.
그러면 애교라고 좋게 이해하고 봐주는 식이다.
그런데 방목하는 장닭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부분의 닭들이 순둥이형인데 반해 어린아이 키 만큼이나 큰 품종들은 공격성을 보여준다.
두어 번 겁을 주어도 외려 쫓아 오며 위협한다.
마음 같아서는 돌맹이나 막대기로 때려 잡아 버리고 싶어도 주인 있는 닭이라서 마음만 굴뚝이다.
밭에 심은 배추, 무우가 미처 자라기도 전에 온통 피해라도 입힐때면 주인과 한바탕 싸움이 붙기도 한다.

[송아지 사랑]

예전에 시골에선 한두마리씩 키우는 소가 크나큰 재산이었다.
경운기가 별로 없던 시절에야 밭갈고 논 써레질까지 하며 재산목록 상위권을 차지하던 녀석이었다.
더구나 새끼를 배고 나면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귀한몸이 되곤했다.
한마리의 소가 두마리로 늘어났으니 그럴 수밖에...
보통 암송아지면  키우고 숫송아지는 내다파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자라나서 송아지를 낳고 다시 어미소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들만 귀하게 여기던 사람과는 반대의 논리이다.
숫송아지를 내다팔때면 어미소가 큰소리로 울어제낀다.
우직하게 생긴 어미소도 자식과의 이별을 맞아 대성통곡 하는거다.

[잉꼬부부]

아이들이 어렸던 아득한 옛날이다.
학교 등교길이나 시골 장터에 가면 병아리를 파는 모습을 자주 보곤했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병아리 상인들의 상술에 둘째가 병아리를 키우고 싶다고 성화이다.
냄새와 털, 그리고 아파트에서의 좁은 공간을 이유로 일거에 거부했지만 마음 한켠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고민끝에 잉꼬 한쌍을 사기로 마음 먹었다.
워낙 작은 새여서 기르기 어렵지 않을거란 생각에서였다.
괜찮은 새장까지 마련해 발코니에 걸어두고 정성스레 보살폈다.
그러던 어느날 모이를 주다가 실수로 잉꼬 한마리가 새장을 탈출했댜.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적잖이 당황했다.
더구나 조금 열려있던 창문틈 사이로 영원히 탈출했다.
아이들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남은 한마리의 잉꼬를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방생하기로 했다.
먼저 날아간 녀석도 지금 방생하는 녀석도 살아남기 쉽지 않을테지만 짧은 순간이라도 새장이 아닌 자유를 선사해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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