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자유를 잃은 물고기>
[깨진 수족관]
조심스레 이삿짐을 옮기고 있었는데 별안간 쿵 소리와 쨍그랑 소리가 이어서 들린다.
회사에서 사무실 이전을 하던 우리는 당황해 어찌할 줄 몰랐다.
수족관도 수족관이지만 엄청난 양의 물이 흘러나와 온 사무실을 적시고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수족관 아랫부분이 깨지지 않아 모레와 자갈은 그대로 담겨 있다.
모래 사이에는 열대어 몇 마리가 가쁜 숨을 몰아쉰다.
사무실이 좁아 수족관을 버리려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엎질러진 물은 서둘러 닦아 내야 한다.
[접시물에서 기절한 붕어]
어린 시절 호기심에 전기충격으로 물고기 잡는 연습을 했다.
자전거 바퀴에 있는 발전기 단자와 자전거 금속 부분에 전선을 연결하고 반대쪽 전선을 냇물에 담근 후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물고기가 기절해 떠오른다는 나름 과학적인 방법이었다.
맑은 냇물 속에 피라미 몇 마리가 헤엄치는 곳을 골라 조심스레 전선을 드리우고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았다.
그런데 피라미 한 마리 꿈쩍하지 않는다.
자전거 자체 발전기 용량이 부족한가 보다.
그물로 붕어 서너 마리를 잡아 집으로 돌아왔다.
접시에 물을 받아 산 붕어를 투하했다.
이번에는 100V 가정용 전기를 붕어 양옆으로 담근다.
순간 붕어가 기절하고 말았다.
잠시 뒤 깨어나면 반복하기를 여러 번......
점차 회복력이 떨어진 붕어는 깨어나지 못했다.
[작은 수족관 만들기]
첫째 딸이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를 위해 어항을 하나 장만했다.
하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고기 몇 마리를 잡아 어항에 넣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어항 속의 물이 혼탁해지더니 물고기의 정체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결국 어항 속 물 오염이 적은 열대어를 키우기로 했다.
유리점에서 내가 원하는 크기의 사각형 수족관을 만들고 조립식 앵글을 구매하여 받침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공기펌프와 필터, 조명을 준비하고 모래, 자갈, 두어 가지 장식을 구해 세팅에 들어갔다.
[열대어 이사 오는 날]
모든 준비가 끝나고 물을 부었다.
수돗물은 염소 성분이 있어 받아 며칠 두었다가 써야 한다.
완벽한 준비를 끝내고 열대어 쇼핑을 나갔다.
구피와 키싱구라미 그리고 수마트라라는 녀석을 몇 마리씩 챙겼다.
드디어 수족관의 주인이 자기 집으로 들어왔다.
키싱구라미는 이름에 걸맞게 서로 키스를 한다.
사랑하는 게 아니라 싸우는 거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수마트라는 제법 활동적인데 구피라는 녀석은 힘차게 움직이지 않는다.
또 한 번의 자문이 필요하다.
내가 간과한 것이 있다.
열대어는 수온이 너무 낮으면 안 된다.
[구피의 자식 사냥]
수족관용 히터를 구해 설치하고 나니까 열대어들의 활동이 조금씩 활발해진다.
세 살짜리 딸의 눈에는 작은 물고기들의 움직임이 신기한 모양이다.
자주 어항 쪽으로 다가가 손짓을 한다.
어느 날 검은색 구피 한 마리가 심하게 배부른 걸 발견했다.
'너무 먹어서 그렇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느 날 좁쌀만 한 무언가가 움직이고 구피가 그걸 잡아먹고 있다.
자세히 보니까 다름 아닌 구피의 새끼들이다.
구피는 원래 자기 새끼를 잡아먹는다는 말에 부화통을 구해 설치하고 어미 구피를 가두었다.
이번엔 다른 열대어가 새끼 구피를 공격한다.
[둥근 유리 어항]
시골 초등학교는 허름한 벽돌 건물에 거친 나무 마루로 되어 있었다.
학생들에게 들기름을 조금씩 가져오게 하고 바닥 대청소를 하면 모처럼 교실이 환해진다.
들기름의 고소한 냄새까지 더해진 교실에 어항 하나가 등장했다.
반장을 맡은 친구의 엄마가 선물로 보내신 것이다.
TV 속에서만 보았던 어항은 아름다운 물결무늬 곡선으로 잘 빚어졌고 맑은 물속에서 헤엄치는 금붕어가 신기해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우리 집은 어항은커녕 변변한 유리그릇 하나도 없는데......
[형광등에 들어간 미꾸라지]
고장 난 형광등 하나를 조심스레 들고 앞마당으로 나갔다.
명주실에 휘발유를 묻히고 형광등 한쪽 끝에 둥글게 감았다.
그리고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활활 타오르던 불길은 순식간에 꺼졌다.
더 이상 휘발유를 공급받지 못해서이다.
차가운 물에 담그고 형광등 끝부분을 비틀면 불에 닿은 부분이 부러진다.
깔끔하지 않으면 다른 형광등으로 재차 시도했다.
어느 정도 모양이 완성되면 안쪽에 발라진 형광물질을 알뜰하게 제거한다.
맑은 물에 담갔다 버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한다.
드디어 작은 미꾸라지 몇 마리를 형광등 안에 입주 시킨다.
[수반 속의 민물새우]
어항을 없앤 후 갑자기 허전한 거실에 수생식물을 키워보고 싶어 졌다.
가까운 경포호에는 주변에 수생식물들이 많이 자라고 있다.
개구리밥과 매생이를 닮은 식물을 채취해 둥근 수반에 담아 거실장 위에 올려 두었다.
그런데 며칠 후 무언가 꼬물거림이 포착되었다.
플랑크톤인지 새우인지......
아니 자세히 보니 새우는 아니고 부새우라 불리는 녀석이다
금세 번식을 하는지 여러 마리가 보인다.
그런데 수반 바닥에 검은 움직임이 보인다.
좁쌀만 한 골뱅이다.
채 한 바가지도 안 되는 호수 물에서 많은 생명이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