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발자취

유명산 등반기(2014)

Bini(비니) 2014. 3. 20. 18:00

<가평 유명산 등반  2014년 3월>


[들어가는 글]

시골의 작지만 40년대에 개교한 상당히 전통 있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시골 학교만의 소박한 기별 모임과 동문체육대회에 함께하곤 한다.
그러나 학교 총동문회에서 주축이 되어 매월 정기적인 등산을 하고 있는 산악회에는 한 번도 함께한 적 없다.
벌써 40차가 넘었다고 하는데......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함께 참여하려고 마음으로만 벼르던 차에 우연한 기회에 동참을 하게 되었다.
동문뿐만이 아니라 때론 비동문 그리고 회원의 지인들까지 함께 한다고 한다.
하긴 주목적이 등산을 통한 건강 증진, 정서 함양, 견문 확대 등을 위한 것이니 만큼 폐쇄적이지 않고 포용적으로 인식되는 측면도 있어 보였다.

 

[내 등산 스타일과는 조금 다른]

 

난 태생적으로 산이라면 무척이나 싫어했으며 지금도 그 마음엔 변함이 없다. 어린 시절 동네의 조그마한 야산에 친구들과 어울려 밤늦도록 뛰놀던 것과는 달리 높은 산들은 어쩌면 혐오 수준으로 거부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건강 문제가 불거져 식이요법과 절주, 운동이 필요한 상황에 처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것이 등산이었다.
결국 산을 잘 오르는 사람들과 함께 등반하기보다는 혼자 주변 가까운 코스를 즐겨 찾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식사는 과일, 생수, 비상용 사탕 또는 초콜릿이 전부였다.
오늘 산행도 전일의 과도한 음주 후에 급하게 챙기느라 식사 준비는 바나나 한 꼭지와 사과 한 개가 전부였다
산 정상에서 모두 모여 도시락을 먹을 때엔 나만 무언가 다르게 보이는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어떤 분들은 밥과 다양한 반찬, 메밀전이며 메밀전병, 심지어는 닭강정, 가자미 회무침까지 준비한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정도면 단순한 등산이 아니라 등산 뷔페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보이지 않는 복병탓에 체력 고갈]

유명산 정상을 향해 등반 했다가 반대쪽 계곡 방향으로 하산 하겠다고 코스를 잡았다.
오르는 코스는 산 북동쪽이어서 간간이 잔설이 보이고 땅속에 남은 얼음 탓인지 마치 진흙밭을 오르는 듯 했다.
신발은 물기 머금은 진흙 덩어리때문에 두어배 무게감을 느끼게 해 주었고 간혹 얼음 위에 얇게 덮인 솔잎, 갈잎은 무시무시한 복병으로 도처에서 도사리고 있었다.
결국 등산로를 피해 마른 덤불을 밟고 등산해야 하는 어려운 조건일 수 밖에 없었다.
오르는 코스가 약 2킬로미터, 반대방향 하산 코스는 4.3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했다.
쉽지 않은 등반 코스가 끝나고 중식을 해결한 뒤 다시금 출발, 하산길에 올랐다.
당연히 하산 거리가 먼 만큼 쉬운 코스일 거라는 내 생각은 아마 지나치게 호사스런 것 같았다.
경사도는 물론이고 어디서 그렇게나 많이들 불러 모았는지 바윗길과 숱한 돌덩이들 때문에 잠시도 발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였다.
총 등산거리는 6킬로미터 남짓한 거리에임도 적지 않은 피로감이 몰려 온다.
가벼운 코스에 길들여져 있던 탓인가 보다.

[유명산 정상에서 맛 본 가평 '잣 막걸리']

나는 건강 때문에 맥주와 막걸리를 멀리해야 한다.
그런데 산 정상에서 잣 막걸리를 팔고 있다는 나름(?)의 첩보를 입수하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가평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잣 아닌가?
가격이 만만치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 주인에게 다가갔다.
먼저 기다리던 손님이 잔술 한잔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잔술 한 잔에 이천 원, 통술 1리터에 칠천 원 한단다.
하긴 먼 거리를 들고 올라온 수고로움을 생각해서라도 그 정도 가격은 되겠지 하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두 통을 구입해 나누어 마셨는데 잣 향 그윽하고 또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꽤 괜찮은 것 같았다.
모두들 이러 저런 다양한 술 종류를 챙겨 온 모양인지 술은 그 정도면 모자라지 않은 것 같았다.

 

[열 길 낭떠러지에서 졸지에 지푸라기가]

 

좁고 미끄러운 등산로에서 내려오는 분들과 교행 할 무렵이면 항상 불안감이 샘솟곤 했다.
내가 느끼는 불길한 예감은 왜 비껴가지 않는 것인지......
40대 등반객 그룹이 내려오는 중 잠시 한쪽으로 비켜 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여자분이 미끄러지면서 내 등산화에 걸리면서 멈춰 섰다.
미끄러지는 건 그렇다 쳐도 갑작스러운 비명과 함께 순발력 있는 동작으로 내 옷소매를 움켜 잡는 것이었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잡는다는 것처럼......
그러고는 내 덕에 살았다고 연신 고맙다고 한다.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먼발치에서 큰 목소리로 다시 한번 고맙다고 한다.
일행들과 함께......
난 지푸라기 역할밖에 한 게 없다는 생각에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시골학교라서 가능한 것들]

어릴 시절만 해도 나의 모교는 상당한 졸업생을 배출하곤 했다.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 학교가 신설되기 전까지만 해도 상당히 넓은 지역에서 등하교하는 학생들이 모여, 모여들곤 했다.
시골학교의 특성상 형제, 자매, 남매들은 같은 학교 동문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내 친구의 형은 내 형의 친구라든가.
모든 남매가 같은 동문이라든가.
나만 해도 사 남매가 모두 같은 학교 선후배 사이라고 할 정도이니까.
형과 함께 오른 첫 번째 등산이기도 했지만 멀리 경기도 유명산에 온 기념으로 인증 사진 한 장쯤 남겨 두는 것이 센스일 듯하다.


[맺는 글]

 

내가 올랐던 산의 대부분은 강원도에 위치해 있고, 그중 대부분은 강릉 인근의 산들이었다.
가깝게는 산책코스 격인 안인 안보등산로, 대관령 옛길, 그리고 조금 난코스라는 대공산성, 제왕산, 태백산, 두타산, 치악산, 설악산이 대부분이었고 지역을 벗어난 산으로는 경북 청송 주왕산에 이어 두 번째 산행이었다.
참 2007년 경인가 관광 단절 직전 금강산도 잠시 오르긴 했었지만......
어느 산이든 가장 등반하기 좋은 계절이 있는 것 같았다.
그 계절이 아니고는 감히 떠올릴 수 조차 없는.
낯선 일행(회원)과 뒤섞여 처음 함께 한 등반인지라 어색함은 있었지만 나름 수확도 있었고, 경기도에 있는 산으로는 첫 등산을 한 의미 있는 것이기도 했다.
기회가 된다면 여름이나 가을에 다시 한번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