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발자취

경북주왕산 주황빛에 물들어(2013)

Bini(비니) 2013. 10. 30. 14:52

<경북 주왕산 산행 2013.10>


[강원도를 벗어난 첫 산행]


어려서부터 약골에다가 저질체력이던 나는 몸에 좋지 않다는 육류와 주류를 두루 사랑하면서부터 건강에 대해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2006년부터 찾아온 지병은 절대적인 절주와 규칙적인 운동을 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고 따라서 6~7년 전부터 주로 가까운 곳으로 산행을 시작하였다.

2006년 북한 잠수정 침투경로를 따라 조성된 안인 안보등산로와 대관령 옛길, 소금강, 대공산성 등 가까우면서 크게 무리가 가지 않는 목표를 정하여 월 2~3회 정도 산행을 이어 갔다.

여름철 혹서기에는 무더위를, 겨울철 혹한기에는 안전을 핑계 삼아 주로 봄과 가을에 집중된 산행으로 간신히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내가 아는 남들은 백두대간 종주, 전국의 명산 기행 등 숱한 산행을 많이 하고 있고 내가 오르던 가까운 등산로에서도 타 지역 등산객들을 적지 않게 보아 왔던 터라 그리 낯설지는 않지만 우연한 기회에 경상북도 청송군에 있는 주왕산에 다녀 올 기회가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한 낯선 산악회와의 만남]


고등학교 친구 두 명이 지역의 한 산악회에 가입하여 매주 또는 격주 한 번씩 등산한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세상이 참 많이 변하여 스마트폰에서 사진과 소식을 현장감 있게 올릴 수 있고 또 친구나 지인들이 바로 확인 가능하여 친구들의 입을 통하지 않고도 SNS를 통해 친구들의 사진과 산행 여부를 확인했고 기회가 되면 언젠가 한번 함께 하려고 생각했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하면서도 친구의 SNS 소식으로 올라오는 배경 좋은 사진을 항상 부러워했다.

가을이 무르익으면서 설악산 단풍이 대부분 스러지고 강릉 인근의 산에도 산 중턱 위쪽은 단풍보다는 낙엽이 더 많아질 즈음, 아직은 단풍이 한창일 남쪽 지역으로 산악회 행선지가 결정되었다고 친구들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조금은 낯설고 또 먼 길에 대한 걱정도 하면서 이른 시간 준비를 마친 나는 아내가 챙겨준 도시락과 보온병, 커피 등을 챙겨 버스 출발지에 도착하였다.

45인승 버스에는 오색 단풍을 닮은 다양한 등산복장 차림의 산악회원들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오늘 나를 비롯해 처음 산행을 나온 분들이 5~6명 정도 되는 것 같다.


[버스 맨 뒷자리는 좀 노는 아이들의 자리....]


버스에 오르자 친구들은 4열로 의자가 배치된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았다.

나도 처음 떠나는 산악회 동행의 어색함을 달래고자 한잔의 술이 필요했던 터에 친구가 소주병을 하나 꺼내는 것이다.

안주는 다름 아닌 점심 해결을 위해 준비한 김밥 한 줄....

생각보다 소주 안주로 꽤나 어울렸다.

버쩍 마른입에 독한 소주와 김밥 한 덩이씩 번갈아 먹기를 서너 차례...... 

나와 일행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는 것을 느끼게 되자 피곤을 달래려 눈 붙이려던 앞자리 회원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버스가 출발하자 산악회 회장님과 고문이라는 분이 인사 말씀이 있었고 산행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산악회 총무님은 흔들리는 버스에서도 아주 능숙하게 회비(산행 참가비) 거출과 인원 확인을 하면서 나처럼 처음 참석한 신입들의 연락처까지 꼼꼼하게 챙긴다.

이어서 신입회원들의 자기소개가 있었다.

많은 분들과 마찬가지로 자기소개란 정말 뻘쭘하고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절차가 아닌가 싶다.


[상상을 초과한 사과주산지의 위용....]


대구 하면 사과, 진영 하면 단감 등 지역의 특산물이 있듯이 청송사과가 유명하다는 말은 익히 들었다.

청송에도 사과가 유명하다지만 동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영덕 근처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조금 들어서면서부터 사과나무가 도로 좌우측에 어마어마한 규모로 심어져 있다.

아직은 영덕군을 벗어나기 전임에도 엄청난 사과나무 과수원에는 깨알 같은 숫자의 사과가 빨간 자태를 드러내고 지나치는 여행객을 유혹하는 듯하다.

고향 강릉에도 과수원이 있고 많은 사과나무를 봐 왔지만 이건 뭐 비교 대상이 아닌 듯하다.

영덕과 청송의 경계인 고갯마루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버스는 위험한 급경사 내리막길을 곡예하듯 미끄러져 내려가 드디어 본격적으로 청송 땅에 접어들었다.

내리막길이 끝날 무렵부터 다시 펼쳐지는 사과 과수원은 영덕 지방의 사과 과수원 규모를 금세 잊을 수 있게 한다.

주렁주렁 매달린 먹음직스러운 사과는 몇 남지 않은 나뭇잎과 함께 위태롭게 사과열매들을 지탱하고 있는 앙상한 가지가지들에게 무한한 고통을 주는 듯하다.

사과 열매들은 형제 많은 집안의 아이들이 제대로 먹지 못해 자라지 못한 듯 다소나마 작은 크기로 보일 정도이다.

이젠 주산지라고 하면 어느 정도 규모여야 하는지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차량 통행이 불가능한 진입로]


저 멀리 삼거리가 나타나자 가을의 막바지인 듯, 한 주 차이로 단풍의 절정시기가 휑하니 지나가 버릴 수 있는 시기여서 그런지 엄청난 차량 행렬이 늘어서 있다.

목적지인 '대전사'까지는 한참 걸릴 것 같은데 이거 낭패로구나 싶은데 다행히도 도로 1개 차로를 임시 주차장으로 사용 중 이어서 도로가 크게 막히는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차량의 진입이 쉽지 않아서 들머리에 한참 못 미친 곳에서 하차하여 도보로 이동하기로 했다.

배낭과 옷가지를 챙기고 등산화 끈을 고쳐 맨 후에 매표소를 향해 걸어가는데 아직도 버스는 주차장에 도착하지도 못할 정도이다.

주차장에서 매표소까지의 거리도 약 1킬로미터 남짓 거리이다.

도로 양측에는 막걸리, 부침개 등 먹거리와 인삼, 나물, 약초류 등의 특산품을 파는 상인들이 즐비하고 무엇보다 사과 판매상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매표소에서 우리 일행은 기념사진을 찍고 각자 자신의 체력 정도에 따라 등산코스를 정하여 산행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오르기 어렵지 않았던 정상]


최근 주변의 낮은 산에 자주 오른 덕인지 가끔은 완만하고 가끔은 급경사 길이어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명산이어서 그런지 경상도는 물론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팔도의 관광객들이 모두 모인 것 같다.

일행들과 함께 오르던 나는 그만 ‘나 홀로 산행’이 되고 말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산행의 묘미를 더하고자 초입부터 가벼운 부침개와 토속 막걸리를 나누려고 따로 둘러 앉았었다고 하는데 첫 동행을 하게 된 나로서는 그 많은 등산객 가운데 일행들을 알아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처음엔 서서히 걸음을 옮겼는데 어느 순간부터 일행을 놓쳤다 생각하게 되어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빠른 걸음으로 걷고 또 걸어도 우리 일행이랄 만한 사람은 만날 수 없다.

더구나 함께 온 친구들 조차......

나름 조용한 산행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다시 페이스를 낮추어 몇 걸음 옮기자 기나긴 행렬이 앞을 가로막았다.

알고 보니까 산 정상에서 '주왕산'이라 써진 표지석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이다.

청송에 처음 오기도 했고 주왕산이라는 생소한 산행지인지라 기념사진 한 장 찍고 싶었지만 홀로 이동 중이었고 또한 너무 오래 기다려야 차례가 올 듯하여 그냥 다음 코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주왕산 정상은 출발지인 대전사 매표소에서 2킬로미터 조금 더 걸린 아주 여유로운 등정이었다.


[내 몸 겨누기도 힘든 산행 길에 자연보호 산악회원]


대구의 '모 산악회'라는 리본을 배낭에 맨 회원 10여 명이 내 앞을 내려가고 있다.

처음엔 그저 산행 중이겠거니 했는데 이 사람들이 멀쩡한 길을 두고 밧줄을 넘어 지름길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지름길이 아니라 등산객들이 버린 물통이며 쓰레기를 주우려고 위험한 곡예 산행을 하는 것이었다.

지저분한 쓰레기까지 마다하지 않고 주워 담던 그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존경하는 마음이, 한편으론 그 쓰레기를 버린 등산객들에 대한 원망이 샘솟았다.

밝게 웃으면서 그들이 나눈 말을 잊을 수 없다.

A 씨 "왜 사람들이 저렇게 쓰레기를 함부로 버릴까요?"

B 씨 "버리려고 한건 아닌데 아마 들고 가다 떨어 뜨렸을거야, 그런데 사실 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에 마지못한 척하면서 그냥 지나쳐 갔을걸......"


[지금껏 보았던 단풍과 규모가 다른 끝없는 주황 단풍....]


주왕산 정상까지의 구간은 여느 산이나 그리 다를 바 없는 보통의 산이다.

그런데 정상에서 내려오면서 조금씩 오색의 단풍이 자태를 뽐내기 시작하더니 계단을 모두 내려와 계곡으로 들어서자 마치 무릉도원 같은 분위기의 단풍 행렬이 나를 맞이하는 것 같다.

그것도 잠시 잠깐이 아니라 끝없이 펼쳐지는......

산 이름은 주왕산인데 가도 가도 끝없는 주황색 단풍 물결이 나도 모르게 ‘주황산’이라 마음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이왕이면 풀코스]


단풍으로 둘러 쌓인 동굴 같은 계곡을 지나자 용연폭포 삼거리에서 매표소 방향으로 2.1Km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아울러 반대쪽으로 0.3Km만 올라가면 ‘용연폭포’가 있다는 안내문도 있다.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이 두어 시간 남은 상태인지라 남은 체력을 바탕으로 폭포까지만 다녀오기로 하고 길을 잡았다.

폭포가 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어도 더욱이 수량이 풍부하지 못해 큰 볼거리는 되지 않았지만 여기도 역시 단풍 하나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폭포에서 매표소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은 엄청난 인파에 갇혀 걸음을 옮기지 못하거나 흙먼지 투성이에 코를 막고 걸어야만 하는 참으로 힘들지는 않지만 불편한 코스가 이어진다.

크나큰 바위로 이루어진 경치 좋은 맷돌바위를 지나 매표소에 접어들자 비로소 안도의 맑은 숨을 쉴 수 있다.

양쪽으로 늘어 선 상점들 사이로 한참을 걸어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집합하기로 약속한 시간을 한 시간 이상 남기고 있었다.

깊은 계곡이어서인지 해가 절반쯤 넘어가 이제 제법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일행 중 연세가 지긋하신 산악회 임원분들께서 어디선가 소주와 함께 하산주로 준비된 메밀전 한 접시를 챙겨 오셨다.

추위도 이기고 또 이러저러한 이야기도 나누고자 함께 소주잔을 비우다 모든 회원들이 하산하여 버스가 출발한다.


[산행을 마무리 하며......]


 

흔히 산행하면 등산, 점심, 하산, 간식, 해단식이 대부분이다.

적어도 가까운 곳을 주로 몇몇 사람들과 함께한 경우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버스로 이동한 머나먼 목적지 산행은 저녁식사까지 마쳐야 산행이 마무리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관광버스 기사님이 안내한 영덕 어디쯤의 휴게소에서 소주를 곁들인 맛난 매운탕은 시장한 우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마음의 안식을 제공하였다.

하지만 강릉을 출발할 때 마신 술, 하산 후 마신 소주에 저녁식사에 함께한 반주 몇 잔은 아주 피로도를 증폭시켰다.

곤히 잠든 나는 영덕에서 강릉까지의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마치 수면마취 상태인 듯 곤히 잠들어 있었고 버스가 도착한 이후 얼떨결에 제대로 된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자주는 힘들지만 건강도 챙기고 수려한 자연도 두루 경험해야겠다.

주왕산 산행 후기.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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