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발자취

두 발로 즐기는 제주(2020.08.15)

Bini(비니) 2020. 9. 1. 21:25
[여행 두려운 여름]

2019년 시작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일상을 온통 뒤바꿔 놓았다.
해외 여행은 차치하고라도 국내 여행도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
친구들이 확보해 둔 양양-제주 무제한 항공권을 이용해 제주올레길 투어를 하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그런데 무더위가 사그라 드려는 8월 중순을 지나면서 바이러스 확진 환자가 심상치 않게 증가한다.
고민은 더 깊어진다.

[양양발 항공기]

유난히 공휴일과 휴일이 겹쳐 임시공휴일이 지정되어 3일간의 황금연휴이다.
꼭두새벽이 아닌 오전 10시 출발 항공편이라 조금 여유가 있지만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 출발했다.
아니나 다를까?
드넓은 공항 주차장이 가득 메워져 있다.
간신히 먼 도로가에 차를 세우고 공항에 들어갔다.
그런데 주차장에 세워 둔 자동차에 비하면 한산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용객들이 많지 않다.
아마 다른 항공기편을 이용하는 손님들이 많아서인가 보다....

[안정적인 비행]

강원도 하고도 양양을 기반으로 탄생한 플라이강원 항공사는 지난해부터 운항을 시작했다.
올 초인 1월에는 제주도 여행을 하면서 상당히 불안정한 조정기술 때문에 적잖이 불안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반년이 지난 이번 여행은 제법 안정감을 준다.
기상 상태도 영향이 있겠으나 제주뿐 아니라 국내 여러 도시로 노선을 추가하며 노하우가 쌓여가는 모양이다.
간간히 보이던 구름조차 사라진 남해안 푸른 바다를 지나 제주공항이 제법 익숙하게 다가온다.

[절대적 고가의 자동차 렌트비용]

'렌트카 하면 제주도'라는 인식이 자리한 건 2010년대 중반 제주여행부터였다.
육지에서 하루 10만원이 넘는 렌트비용이 제주에서는 5만원에도 훨씬 못미치곤 했다.
엄청난 중국 관광객 수요를 맞추기 위해 과잉 투자된 측면도 있겠으나 이용객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황금연휴를 맞아 엄청난 가격으로 치솟더니 그나마 렌트 할 차량조차 사라졌다.
하긴 산책로 트래킹을 하는데 굳이 렌트카가 필요할까? 하는 생각도 렌트를 포기한 이유중에 하나이다.

[제주에서의 첫 공항버스]

결국 공항버스를 타고 서귀포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매표소가 보이지 않아 버스표 없이 정류소에서 기다리다 먼저 오는 버스에 올랐다.
각자 교통카드를 꺼내고 행선지를 말하자 운전기사가 금액을 셋팅하면 카드에서 지불되는 형태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카드는 하나만 있어도 여러 사람의 교통요금을 결제할 수 있다고 했다.
제주 횡단도로가 아니라 중요한 마을을 거치는 노선이라 적잖이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승용 렌트카를 운전하면서 스치던 주변 풍경과는 또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올레길 투어 스타트]

버스 종점에서 하차하자 가마솥 열기가 온세상을 뒤덮고 있다.
다시 시내버스를 환승해야겠지만 그냥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숙소는 올레길 중 가장 좋은 코스 두세 개의 출발지 근처에 있었다.
택시가 정차한 곳은 숙소 앞....
잠시 여장을 풀고 점심식사를 해야한다.
간단한 샤워와 트래킹 복장을 하고 숙소 앞으로 모였다.
음식점 여러 개가 즐비한 이곳이 먹자골목이란다.
네거리식당과 바로 옆 화정식당이 눈에 띈다.
네거리식당은 번호표를 뽑은 손님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있다.
우리는 옆집 화정식당에서 조용하게 식사를 마쳤다.

[올레길 6코스]

에어콘이 있는 음식점에서 식사를 마치고 마주한 무더위는 그야말로 열대기후였다.
도심에서 시작되는 코스의 출발점을 무시하고 무작정 걸었다.
성산 방향으로 가긴 가는데 가급적 바다 방향으로 향했다.
바다라면 신물이 날 정도지만 육지바다와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지는 제주바다를 보기 위해서였다.
따가운 햇살에 바람조차 없는 오후에 마냥 걸었다.
조금은 변두리 같은 도로를 지나니 어촌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갯내음은 느껴지지만 바닷가 특유의 시원함은 실종된 지 오래이다.

[쇠소깍까지의 험난했던 여정]

6코스의 종점은 쇠소깍을 조금 지나쳐야 한다.
그런데 쇠소깍 까지는 대체 얼마나 남은걸까?
다행인 것은 지난 2월 제주여행에서 쇠소깍을 처음 다녀왔다는 것이다.
덤으로 카약까지 탔던 기억에 그나마 친숙함이 생긴 이름이다.
해안 마을과 그냥 도로를 지나다 보면 카페도 제법 보인다.
해안가엔 제법 길쭉한 바위들이 늘어서 있다.
저런 바위를 구럼비 바위라 하는지?
한여름 이글거리던 해가 조금씩 빛을 잃어가더니 서서히 기약 없는 발걸음도 종점을 향했다.
드디어 쇠소깍이다.

[숙소까지의 시원한 택시 여행]

뚜벅이 여행에는 아무래도 버스만한 교통편이 없다.
그런데 버스 정류소와 정확한 운행정보를 찾을 방법이 없다.
피곤함과 시장기가 함께 밀려오자 교통수단을 급변경하기에 이른다.
콜택시를 불렀다.
가깝지 않은 거리에서 오는 모양인지 15분은 기다리라고 했다.
인근 상점에서 시원한 음료 하나씩을 챙겨 잠시 땀을 식힌다.
근처에 도착했다는 택시와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우리 일행이 기다리는 곳의 위치를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한 까닭이다.

[Lagucy Call Taxi]

요즘이야 얼마나 스마트한 세상인가?
콜택시를 부를 때 전화가 아닌 스마트폰 앱으로 직접 부르고 택시 기사도 부른 위치까지 정확하게 달려오는 세상이다.
그런데 전화로 부른 콜택시에는 목적지를 알려줘야 한다.
익숙치 않은 숙소 이름을 검색해 말해 보지만 도무지 어딘지 모르는 눈치이다.
결국 낮에 봐 두었던 '네거리식당'을 이야기하자 곧바로 'OK' 사인이 난다.
숙소들은 자주 주인이 바뀌고 이름도 바뀌지만 맛집은 변화가 덜한 모양이다.
이젠 전통의 콜택시가 아닌 스마트한 콜택시를 이용해야겠다.

[먹자골목 돼지보쌈]

소금에 절인듯 한 몸을 씻고 무작정 숙소를 나섰다.
해가 넘어간 시간이지만 여전히 더운 날씨이다.
장마가 겹친 탓인지 높은 습기가 무더위를 더욱 가중시킨다.
먹자골목의 가까운 한 보쌈집을 택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기 위해서이다.
넓은 실내에는 서너 명의 손님만 보인다.
가뜩이나 바이러스 확산이 걱정인데 조용한 집으로 잘 찾아왔다.
그런데 에어컨 하나가 감당하기엔 역부족인가보다.
더우기 서너 명이던 옆 테이블에 스무 명 가까운 일행들이 몰려든다.
무슨 동호회라도 되나 보다.

[숙소로 향하는 길]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도망치듯 음식점을 나섰다.
실내 온도가 높아서인지 바깥 공기가 제법 시원하게 느껴진다.
멀지는 않지만 그래도 무더위를 뚫고 몇 시간을 걸었던 터여서 피로가 밀려온다.
더구나 내일과 모레의 스케줄도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한 친구가 어디서 소주 한 잔 더 하자고 조른다.
하긴 서둘러 저녁식사를 마치느라 반주가 좀 부실하긴 했다.
결국 치킨집으로 향했다.
출출함도 달래고 안주로도 좋은 치킨이 최고의 메뉴이다.

[서양식 호텔의 불편함]

화장실 바닥엔 배수구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룸보다 바닥 높이가 살짝 높아서 빨래하며 생긴 물이 룸으로 흘러든다.
샤워용 칸막이가 있는 곳은 바닥 높이도 낮고 배수구도 있다.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서양식 호텔은 샤워장이 아닌 곳에는 물을 흘리면 안된다고 했었다.
타올 하나를 이용해 바닥물기를 모두 말렸다.
고급 호텔도 아니고 내나라 제주에 웬 서양식 화장실이람?

[일찍 일어난다고 시원할까?]

이튿날 이른 아침에 로비에서 집결했다.
조금이라도 더워지기 전에 한걸음 더 옮겨야 한다며 아침도 거르고 출발했다.
오늘 코스는 올레길 7코스이다.
어제의 6코스와는 출발점은 같고 정반대 방향으로 있다.
오전 트래킹이라 해를 등지려고 시작점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일곱시를 조금 넘긴 시간인데 마치 화산섬이 채 식기 전인 양 열기가 느껴진다.
그래도 대낮보다는 훨씬 훌륭한 조건이다.
더위를 피하려고 건너 뛴 아침식사가 아쉬운 시간이다.
더위도 시장기도 모두 놓친 느낌이랄까?

[말로만 듣던 외돌개]

두꺼운 양말과 등산화에 무더운 날씨가 더해진 트래킹 시간이 흐르면서 발가락에 아린 느낌이 시작된다.
걸을 땐 모르겠지만 잠시 휴식을 취할 때마다 고통으로 변한다.
그래도 단체행동이라 고통을 견뎌가며 걷는다.
아스팔트와 바윗길이 번갈아 나타난다.
어쩌다 지나는 짧은 숲길엔 바람 한 점 없다.
그래도 걸으면서 매 순간 바뀌는 해안의 아름다움은 바꿀 수 없는 제주만의 매력이다.
절벽 아래 홀로 선 거대한 바위를 배경으로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있다.
안내판엔 '외돌개'라 표기되어 있다.
'아! 여기가 외돌개인가 보네....'

[얼음쥬스와 함께한 짧은 휴식]

한 친구가 화장실이 급하다며 앞장서 갔다.
나머지 일행은 조금씩 휴식을 취해 가며 여유롭게 걸었다.
그런데 한참을 걸었는데 화장실을 찾는다던 친구가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탈수증에 화장실에서 쓰러지지나 않았을까 염려되어 전화를 했다.
다행(?)인지 아직도 화장실을 찾지 못해 직진중이라 한다.
잠시 후 지도에서 자신의 위치를 캡쳐하여 보내왔다.
해안의 한 카페에서 자리잡고 있다는 것....
냉커피와 얼음쥬스를 마시며 짧은 휴식을 취했다.

[법환포구 횟집]

시원한 카페문을 나서자 더 무시무시한 열기가 기다리고 있다.
상점에서 개당 천원이나 주고 샀던 얼음물도 8월 대낮의 열기를 견디지 못한다.
어느새 열한 시를 넘긴 시간이다.
능력만 된다면 생식이라도 하고픈 시장기가 몰려온다.
몸도 마음도 지칠 무렵 '오늘은 가장 먼저 만나는 음식점에서 아침 겸 점심식사를 하고 일정을 마치자'고 계획수정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포구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법환포구횟집'이다.
임식점 간판을 보자 시장기가 순식간에 밀려온다.

[호불호 자리돔 세트]

10년도 더 지난 제주여행에서 자리돔 물회를 맛본 기억이 있다.
초고추장 물회에 익숙한 육지사람으로서 된장 양념의 물회가 입맛에 맞진 않겠지만 그래도 현지에서는 현지 음식을 즐기는 것도 참여행의 묘미이다.
마침 자리돔 세트메뉴가 보인다.
가격도 8만원으로 저렴한데 너댓 명이 넉넉히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흔쾌히 주문을 마졌다.
넓은 룸과 홀에는 물론이고 출입문 바깥의 간이 테이블까지 손님들이 늘어 서 있는 모습이제법 맛집인 듯 하다.

[다양한 자리돔 요리]

짭졸하게 잘 절여진 자리돔에 이어 조금 태운 느낌의 구이가 나오고 이어서 껍질째 저민 세꼬시 형태의 회가 나왔다.
마지막으로 양푼 가득 푸짐하게 담긴 물회가 나왔다.
이거 양으로는 '매우만족'을 이끌어낼 수 있겠지만 문제는 맛이다.
그럭저럭 괜찮은 맛인데 한 친구는 자기 입에는 영 맞지 않는다고 불평을 널어놓는다.
오늘 트래킹이 마무리 되었으니 반주 한 잔은 기본이요 아주 특별한 안주상이 차려진 모양새다.